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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Mar 15. 2024

내가 태어난 날

시 쓰는 이야기

내가 태어난 날   


음력 2월과 양력 3월을 걸쳐

겨울과 봄 사이의 어느 날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태어났다지     


음력으로 세월을 사시던 할아버지

동사무소로 훠이훠이 내달려가

헛기침 몇 번 후 기록된 2월의 어느 날


난 2월생이 되어

꼬박 삼백칠십여 일 어린 꼬마로 학교에 갔지     


또래보다 한 뼘은 작고

고만한 애들보다 키만큼 생각도 여려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며

눈치 백 단 처신 낙제점의 몸 사림

그 시간이 쌓여

태도가 되고 습관이 되어

INFJ의 똘끼를 장착했지  

   

그 시절을 어찌 견뎌왔는지

불을 품고 물인 듯 살아온 날들     


덧대거나 빼낸 것 하나 없이

예전 그대로의 마음과

다만 낡아가는 육신     

할아버지 헛기침으로 기록된 종이도 낡은

수십 년 전의 그 어느 날인 오늘     


햇살은 따사롭고

꽃나무 가지엔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들의

환희가 툭툭 터져 나와

온누리로 퍼지고

난 그저 가만히 서서

한껏 즐기는 시간     


아린 배 움켜쥐고

아궁이에 불 지피던 엄마는

하늘에서 허리 펴는 날


그 새벽, 내가 태어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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