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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정리

시 쓰는 이야기

by 오리냥

옷장 정리

유복녀


봄 햇살 좋은 날

옷장 열어 묵은 옷을 꺼낸다


색 바랜 티셔츠

유행 지난 재킷

무릎 나온 면바지 몇 장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각각의 사연 담은 옷 무더기

덜어내고 덜어내도

주인의 행색과 닮은

옷장 속 낡은 옷들 사이

짙은 갈색 카디건 하나


들꽃처럼 푸르던 시절에

큰맘 먹고 사들여

아껴가며 입던 옷

그 카디건 걸쳐 입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내 나이 가을이 되도록

나를 대변했던 또 다른 나


계절을 몇 번 건너뛴 옷가지 틈에서

이른 봄에 두어 번

늦가을에 두어 번

진정한 옷이 되는

어쩌면

먼 후일 나 떠나는 날까지

유일하게 옷장 속에 남아있을

나의 역사

나의 주름

가만가만 쓰다듬다

드르륵 옷장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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