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정리
유복녀
봄 햇살 좋은 날
옷장 열어 묵은 옷을 꺼낸다
색 바랜 티셔츠
유행 지난 재킷
무릎 나온 면바지 몇 장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각각의 사연 담은 옷 무더기
덜어내고 덜어내도
주인의 행색과 닮은
옷장 속 낡은 옷들 사이
짙은 갈색 카디건 하나
들꽃처럼 푸르던 시절에
큰맘 먹고 사들여
아껴가며 입던 옷
그 카디건 걸쳐 입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내 나이 가을이 되도록
나를 대변했던 또 다른 나
계절을 몇 번 건너뛴 옷가지 틈에서
이른 봄에 두어 번
늦가을에 두어 번
진정한 옷이 되는
어쩌면
먼 후일 나 떠나는 날까지
유일하게 옷장 속에 남아있을
나의 역사
나의 주름
가만가만 쓰다듬다
드르륵 옷장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