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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Sep 11. 2023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장애인 가족 이야기


  십 년 전 모 매체 지면에 실렸던 작은아이에게 쓴 편지글을 읽었어.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는 듯 아련하고 새삼스럽더라. 그땐 그런 마음으로 그런 날들을 살아가고 있었구나 싶었지.


  아이의 장애를 버거워하던 시간에서 아주 조금씩이지만 벗어나며 그 빈 자리로 행복감을 채워넣는 중이더구나.

  아이가 부르는 콧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아침마다 여드름 난 얼굴에 로션 발라주며 즐거워했고, 아이가 자기 잘못을 엄마 사랑한단 말로 어찌 뭉개보려는 그 술수에 깔깔 웃는다고도 썼네. 그렇게 애틋한 마음을 모아 살아가는 날들에 희망을 심었더라고.

  그 전 십 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은 수렁의 디뎌지지 않는 바닥처럼 숨 막히고 암흑같은 시간이었지.


아침이 오는 게 싫었고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었잖아.

  그 시간을 견뎌내느라 울지 못하는 새처럼 가슴에 설움을 주렁주렁 매달던 시간을 그렇게 넘어왔더구나.


편지글 중 이런 내용이 들어있었어. 고도비만의 아이를 일 년 동안 날마다 줄넘기를 시켜 꽃미남으로 만들었다고.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독하게 다뤘노라고. 그때 독하게 굴었던 자신의 마음은 아이보다 더 쓰리고 아팠지만, 건강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고.


  맞아. 그땐 그랬지. 어떻게든 정상으로 되돌려놓고 싶었던 거야. 아이가 살아갈 앞날을 미리 겁내며 괴로워했거든. 다 내 탓이고 업보인 듯도 해서 수없이 자책하며 자신을 채찍질했었잖아.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아니? 십 년 전의 그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단다. 아이는 스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 혼자 버스 두 번 갈아타며 복지관에 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지. 물론 복지관까지 가는 동안 버스를 탔네, 내렸네, 갈아탔네, 도착했네, 오전 수업 열심히 했네, 끝났네, 칭찬 많이 받았네, 돌아오는 버스 탔네, 집에 왔네, 이렇네 저렇네 일거수일투족을 전화로 보고해. 특히 칭찬받았단 얘긴 카톡으로도 보내고 저녁에 만나면 직접 얘기까지 해줘. 그때마다 나도 잘했다고, 멋지다고 아낌없이 칭찬을 남발하지.


  난 아이가 홀로 자신의 삶을 사는 동안 나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학업을 이어가고, 그리고 일도 하지. 어때 이만하면 꽤 괜찮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거 맞지?

  그땐 이런 일상을 감히 상상이나 했겠어? 꿈이라고 여길 뿐이었잖아. 그런데 꿈 꾸는 자는 꿈을 향해 나가게 되고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룬다더니 정말 그렇게 된 거야.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아이의 독립과 나만의 시간.


  십 년 전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아이가 곁에 없으면 허전하고 심심하기까지 해. 믿어지려나.

  그 시절 수고한 네 노고의 대가를 지금의 내가 누리며 보상받고 있어. 다 너의 애씀 덕분이야.


  나이 들어가면서 제일 시시한 게 뭔지 알아? 웃을 일이 줄어드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내 곁엔 영원한 다섯 살 영혼을 가진 아이가 다섯 살의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내 걱정을 해줘. 그때마다 난 웃게 되고, 이 아이가 내 곁에 머물러 있음에 감사해한단다.


  그러니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가슴 아파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마. 계절마다 새로 피는 꽃을 보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도 보고, 온갖 바람이 실어 오는 향기도 느끼며 마음 꽉 찬 하루하루를 살아가. 네 곁에서 너를 바라보며 따뜻한 마음이 자라는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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