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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Sep 11. 2023

꽃 중의 꽃

장애인 가족 이야기

  어릴 적 큰아이는 맘고생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장애아 동생을 챙기느라 바쁜 엄마 때문에 혼자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도 엄마를 탓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날 장애아 가족을 위한 세미나에서 가족의 심리를 다루는 내용을 접했다. 큰아이가 염려되어 미술 심리검사를 받게 했다. 아이가 그린 그림엔 외로움과 슬픔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그림은 아이는 외딴섬에 홀로 남겨져 있고 엄마, 아빠, 동생은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그림이었다. 왜 섬에 혼자 남아 있냐는 물음에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때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부족하기만 한 부모 품에서 아이는 사춘기의 깊은 고민까지 홀로 견디며 아픈 나무로 자라났다.

  며칠 전 아침의 일이다. 주방에서 김치를 담느라 분주한 내게 아이가 불쑥 한마디를 건넨다. 엄마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 철원 외할머니 집이 생각나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우리가 시골에 가면 주방에서 할머니가 음식을 만들곤 했는데 그때 늘 나던 냄새란다. 그 말에 한참을 울컥거렸다. 아이의 마음엔 어떤 무늬가 새겨진 걸까. 묵묵히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금도 아픈 걸까 싶어 신경이 쓰였다.

  요즘 들어 큰아이는 내 글의 첫 독자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아이는 시큰둥했다. 읽어달라는 애원 섞인 부탁에 마지못해 읽은 뒤, 좋다는 단 한마디가 돌아올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의 감성이 나와 닿아 있음을 알기에 꾸준히 검열을 맡기곤 한다.

  내가 글 쓰는 기간이 길어지며 아이의 태도가 점차 바뀌었다. 자칭 팬이 되었단다. 시를 건네주면 시에 숨겨진 속뜻을 제법 읽어내기도 하고 수필엔 구체적인 조언을 붙이기도 한다. 이 부분은 조금 밋밋해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와요, 이 부분은 감동이 있어요. 때론 아이의 조언에 발끈해 내 입장을 내세워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조언을 받아들여 고치며 글을 완성해 나간다.

  어젠 베란다 텃밭에 대한 글을 썼다. 꽃밭이기도 한 나만의 작은 정원을 글의 주제로 삼았다. 가장 오래된 벤저민 나무 이야기부터 시작해 작은 화분의 사연까지 구구절절 글에 옮겼다. 아이에게 총평을 부탁했다. 제법 진중한 태도로 글을 읽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너무 설명만 장황해요. 어떻게 쓰면 좋겠냐는 반문에 예를 든다.

  같은 장소에 다양한 모양의 꽃이 있잖아요. 그중 어떤 꽃은 봄이 되면 곧바로 꽃을 피웠다가 이내 지고 마는데 어떤 꽃은 더디게 꽃을 피우고 오래 피어 있어요. 또 어떤 꽃은 높은 곳에서 피어 시선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어떤 꽃은 낮게 피어 몸을 굽혀야만 볼 수 있잖아요. 우리 집 꽃들도 그렇고요. 제철에 맞게 피어나는 꽃들도 있지만 조금 늦게 피어나도 제 향기를 잃지 않는 꽃이 있다며 엄마가 신기해했잖아요. 그래서 나도 엄마의 미니 정원을 좋아하거든요.

  순간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마치 너를 두고 하는 말 같네. 네 이야기를 하는 거니? 속이 얕은 난 그렇게 되묻고 말았다. 그렇기도 하지요……. 말끝이 흐려지는 아이의 대답을 미소로 받아 안고 뒷말을 잇지 않았다.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해주고 싶었던 말을 밤새 숙성시켰다.

  오늘 아침 식탁에 앉은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어제 네가 한 말에 난 감동했어. 무슨 말이요? 늦게 피어난 꽃의 향기가 더 짙고 오래간다는 말. 난 네가 지금 많이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런 희망을 품고 있다는 건 미처 생각지 못했거든. 네 노력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안심이고 미덥네. 아이의 덤덤한 표정 안으로 미소가 슬쩍 지나간다.

  우리 집 작은 정원엔 지금도 꽃이 피어나고 있다. 봄에 심은 미나리에서 하얀 꽃망울이 올라오는 중이고 오렌지쟈스민 꽃나무는 작년보다 조금 늦게 꽃망울을 맺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머잖아 우리 집 베란다는 꽃향기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때를 알고 기다리는 것도 물론 좋지만 막연한 기다림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괜찮다. 내게 기다림은 희망이다. 기다림은 늘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가꾸는 나만의 정원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만큼 아이도 자신의 나무에 꽃을 피우기 위해 하루하루 성장해가고 있다.

  베란다 정원의 꽃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 꽃밭에도 두 아이의 꽃나무가 자라난다. 어떤 빛깔의 어떤 향기로 피어날까. 나를 지탱해주는 나만의 정원 안에서 난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고맙다, 내 꽃들아. 사랑한다, 온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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