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하:다

프롤로그 2

by 완두



구불구불한 골목길 끝에 내가 공부할 타로 학원이 있었다. 같이 타로를 배우고 싶다며 따라나선 내 지인,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주말마다 상경한다는 삼십 대 회사원, 타로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스물몇 살 정도의 아가씨, 북한산 자락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한다는 초로의 남성, 나를 포함 이렇게 다섯 명이 그 수업의 수강생이었다.


타로 수업은 생각했던 대로, 아니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메이저 카드 위에 적힌 로마 숫자도 헷갈려서 버벅댔는데 이내 익숙해졌다. 직접 타로 덱을 만져본 건 처음이지만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경험한 수십 번의 타로 상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카드를 한 장 한 장 보면서 ‘아, 전에 타로 상담 시 나왔던 카드가 이거였나 보다.’ 연결 지어 보기도 했으니까.


세 시간의 즐거운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개 찍혀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직장동료였다. 전화하자마자 대뜸 왜 줌 설명회에 안 들어왔느냐고 물어왔다. 그제야 나는 승진시험 관련 공개 설명회가 열리는 날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헉!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타로 수업과 중요한 설명회를 맞바꾼 것이다.

초급반을 마친 뒤 중급반도 수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이제 정말 승진시험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리 공부를 시작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준비 기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게다가 나이 많은 수험생이라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달 뒤 나는 집 근처 조그만 타로 샵의 개인 수강생이 되었다. (일부러 개인 교습을 택한 건 아니고 신청자가 나밖에 없다 보니 일대일 수업이 됐다.)

시험공부로 인한 갖가지 스트레스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는데, 그게 내겐 타로였다. 답답하거나 우울할 때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타로 상담을 받다 보니 차라리 타로 수업을 계속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업을 신청한 것이다.

수강생이 혼자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타로 수업인지 개인 상담인지 정체가 모호했지만, 말 그대로 학생 맞춤형 수업이었다.


강사분 사정으로 더는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다음엔 샵 이름에 '심리상담' 글자가 들어있는 곳으로 옮겨 배움을 이어 나갔다. 유니버설웨이트 카드가 아닌 오쇼젠과 라이트시어즈 카드로 수업이 진행됐는데, 그곳에서도 타로를 배운다기보다는 타로 상담을 받는 기분이 종종 들곤 했다. 이전 타로 샵과 다른 점이라면 개인 상담에서 집단 상담으로 바뀐 정도랄까. 그 강사님은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역시 모든 수업은 가르치는 분의 색깔을 그대로 담는(혹은 닮는) 법이었다.


암튼 시험 6개월 전까지 이어진 타로 수업을 통해 기초가 차곡차곡 쌓여갔고, 간단한 리딩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말이다.


첫 번째 시험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아무리 첫 번째 시험은 날리는 거라고 해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분간 타로를 접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건, 지긋지긋한 수험생활을 두 번으로 끝내고 싶다는 강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데... 차년도 승진시험 대비반이 개강하는 11월에, 나는 승진시험 학원 대신 타로 학원에 덜컥 등록해 버렸다. 그것도 4개월이라는 긴 과정을 말이다. 어차피 10개월 정도 계속되어야 하는 공부인지라 미리 진을 빼고 싶지 않다는 게 자기 합리화였지만, 솔직한 심정은 신기하고 재밌는 타로를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글쓰기는 완전히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처음 타로 상담을 받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내 고민은 "글쓰기와 시험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을까?" 였는데, 어느새 글쓰기는 쏙 빠지고 타로와 승진시험이 서로 우위를 다투게 된 것이다. 주객전도도 그런 주객전도가 없었다.


처음 글쓰기 때문에 관심을 두게 된 타로, 그런데 그 타로로 인해 글쓰기와 더 멀어지고 말았으니 무슨 아이러니인지...





이 글을 적다 보니 문득 예전에 절 운동을 하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절 운동이 몸에 좋다고 해서 한동안 열심히 절 운동을 하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100배 정도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500배를 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런데 익숙해지고 나니 지루함이 느껴졌다. 한 시간 넘게 반복되는 행동을 하다 보면 너무 지루해서, 나중엔 힘들어서가 아니라 지루해서 운동을 멈추기도 했다.


그때 내가 생각해 낸 게 TV 드라마를 보며 절 운동을 하는 거였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를 보면서 절 운동을 하면 지루하지도 않고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인기를 끌던 드라마를 한 편 골라 시청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시작할 때 첫 절을 시작하고 드라마 마칠 때 마지막 절을 마쳤는데, 처음엔 너무나도 좋은 방법이라며 스스로 만족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문제가 생겼다.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되면서 절 운동이 드라마 몰입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절 운동이 드라마 몰입을 방해한 게 아니라 드라마가 절 운동 몰입을 방해한 건데도 말이다. 고개를 숙이는 동작을 하는 동안은 화면을 볼 수 없으므로 놓치는 장면이나 대사가 생기게 되는데, 그 게 못마땅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절 운동을 쉬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나의 절 운동 루틴은 자동 종료되었다.


이 어이없는 주객전도라니...





전에 두 가지 수업을 놓고 둘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카드를 뽑았더니 이렇게 나와 놀랐던 적이 있다. 카드는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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