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
지금 돌아보니 그동안 다닌 학원이나 받은 강좌가 열 개가 훌쩍 넘는다. 이전 글에서 밝혔던 대로, 여의찮은 상황 속에서 그때그때 다닐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
꽤 비싼 수강료를 지불했던 학원부터 너무 저렴해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던 공공기관까지, 4개월 종합 코스부터 4시간짜리 특강까지, 10명 정도가 복닥거리던 단체 수업부터 나 홀로 수업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카드 배열법이나 리딩법 등 실제 타로 상담에 필요한 것을 중점적으로 배우기도 했고, 융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강의를 통해 타로의 심연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기도 했다. (물론 강의 내용 중 반의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레노먼드 카드처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은 강좌는 인강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대면 강의를 선택했다. 원래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대면 강의를 더 좋아하는 데다, 심리의 영역을 다루는 타로는 직접 만나서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내 취향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많은 곳을 기웃대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다. 한 학원에서는 중급반부터의 수강을 용납하지 않아 이미 공부한 기초 과정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처음엔 시간이나 비용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기초를 다지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그리 억울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중급반 수강생이었던 어느 학원에서는 초급반부터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강사분에 따라 카드에 대한 해석이 큰 차이가 나는 점이었다. 여기저기서 배운 게 뒤섞이다 보니 혼란스러웠고, 가끔은 리딩을 하면서 어느 강사분께 배운 대로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어떤 학문이든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고, 더구나 타로처럼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없는 경우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타로가 점술이다 아니다, 역방향도 봐야 한다 안 봐도 된다, 같은 고전적인 논제에 대한 의견 차이는 얼마든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업을 받다 보면 초보자인 나조차도 고개를 갸웃하게 할 만큼 엉뚱한 주장을 펴는 강사분도 있었다. 또 직관이라는 명분으로 카드의 기본 상징을 무시하는 리딩을 하는 분에겐 도대체 직관이라는 게 배워서 키울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프롤로그인데 너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이쯤에서 멈추려 한다. 앞으로 글을 써나가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짚어보고 싶긴 한데, 내 얕은 지식으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타로 수업을 받는 데만 열심인 게 아니라 실전도 열심히 했다. 타로에서 실전이란 누군가를 상대로 실제로 타로를 봐주는 걸 말한다.
기초 과정을 마친 뒤부터, 편한 모임이 있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 나는 늘 타로 덱을 들고나갔다. 물론 원하는 상대에 한해서였지만, 상대방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은 뒤 정성스럽게 카드를 뽑고 그 결과를 리딩해주곤 했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카드 조합에 당황해 버벅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내 리딩을 들으며 신기해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내가 더 신기해한 적도 많다.
겸직이 허용되지 않는 공무원 신분이라 돈 받는 타로 상담사가 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타로를 봐주고 피드백을 받으며 리딩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던 것 같다.
모태 기독교인인 내가 사람들 앞에서 타로 덱을 꺼내 드는 게 절대 쉽지는 않았지만, 그 고민은 일단 접어두고 사람들과의 소통 측면만 생각했다. 타로는 내게 너무나도 유용한 소통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의 타로’라는 주제는 꼭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므로 나중에 별도의 글로 진지하게 다뤄보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배운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타로를 봐주겠다고 한 게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무모함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그런 무모한 짓을 선뜻 저지른 내 용기를 칭찬하고 싶다.
긴 프롤로그를 적어 나가며, 내가 왜 이렇게 타로에 열심이었는지 생각해 봤다.
생각 끝에 얻은 답변은 ‘재미있어서’다. 이 답변을 듣고 실망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재미를 느끼는 것만큼 높은 경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자님도 그러시지 않았는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나는 타로를 즐기는 사람이고, 그 즐김에 진심을 더하고 있다.
덧붙임:
프롤로그를 3회에 걸쳐 나눠 쓰다 보니 글의 밀도나 문장이 균일하지 않네요.
3회 차 글은 쓸데없이 진지하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