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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35만 원어치의 분노
가성비 나쁜 분개 18화
by
완두
Oct 21. 2024
새 프라이팬을 샀다.
남편에게, 아들에게, 이번에는 새 프라이팬을 잘 길들여보자고 말했다.
지난번처럼 아무렇게나 쓰다가 금세 망가뜨리지 말자고,
당부
와
요청
과
협박
을 동시에 했다.
볶음에는 웍이라는 도구가 더 적당하다는 걸, 코팅 팬에게는 나무 주걱이 짝꿍이라는 걸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집 프라이팬의 일생은 그리 길지 않다.
적당한 온도에서 요리한 뒤 그걸 잘 식혀 세척하고 말리는 것, 볶음용과 부침용으로 용도를 구분해 사용하는 것,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
이런 기본 관리 지침이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침용 프라이팬에 김치를 넣고 스테인리스 수저로 박박 휘젓는다.
그러고 난 뒤 뜨거운 상태로 싱크대에 담가 찬물을 끼얹는다.
지난 주말 아침에 계란프라이를 하다가 프라이팬을 내던질 뻔했다.
다 눌어붙어 너덜너덜한 계란프라이를 보니 화가 났다.
낡은 프라이팬이라면 화가 머리끝까지만 났을 텐데, 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거라 머리끝보다 30센티쯤 더 높게 치솟았다.
3만 5천 원을 주고 산 프라이팬 때문에 35만 원어치 만큼 분개한 거다.
프라이팬이란 게 손잡이를 잡으면 누군가의 뒤통수를 내리치기 딱 좋은 크기와 모양을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1초도 안 돼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새 프라이팬을 써 보니 기름 없이도 계란프라이가 될 정도로 느낌이 좋다.
부디 이 프라이팬은 중간에 사고사 하지 않고 제 수명을 다해주길 바란다.
더불어 다음부터는 가성비를 고려해 딱 그 가격만큼만 분개하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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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난이도 최상인 딸아이와 난이도 최하인 아들 녀석, 그 둘의 평균값을 내면 대한민국 평균 치쯤 되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23년 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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