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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Oct 16. 2024

시월의 어느 구린 날에 上

타로 길에서 만난 사람들


타로 길에 들어선 지 어언 4년 차, 이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강생으로서 만난 강사분과 도반들, 내담자 입장으로 만난 프로 리더들, 그리고 얼치기 타로 리더가 되어 만난 피상담자들까지, 타로라는 매개체를 통해 꽤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했다.

프롤로그에 밝힌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타로를 배운 탓이기도 하고, 여러 타로 리더에게 받은 다양한 상담 때문이기도 하고, 또 어느 곳에서나 적극적으로 카드를 펼친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써보려 한다.


그 첫 이야기 주인공으로 누굴 고를까, 잠시 고민하다 보니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가 이 인물을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고른 이유는 이거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 가장 독특한 캐릭터로서 좀 황당하고 어이없는 에피소드를 내게 제공했다는 것!


그분은 맨 처음 타로를 배운 학원에서 만난 초로의 남성이다. 어느 산자락에서 자연건강센터인지 명상센터인지를 운영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명절 때 대형마트 임시 판매대에 놓인 건강식품’이 딱 떠올랐다.


서너 번 반복된 그분과의 만남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황당’이라는 단어를 고를 수 있겠다. 그 글자를 뒤집은 ‘당황’도 적절하다. 다시 말하면 ‘황당과 당황의 콜라보’ 쯤 될 것 같다. (‘컬래버’가 맞는 단어라고 나오는데 여기선 ‘콜라보’가 훨씬 더 어울려서 그냥 콜라보로 적었다)  

   

그분은 그 학원 다섯 명의 수강생 중 유일한 남성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타로를 배운 곳이라 당시는 별로 신기하단 생각을 못 했는데, 60대 중반 남성을 타로 학원에서 만나는 건 참 드문 일일 거다. 3년 동안 열몇 곳의 학원을 전전했지만, 남성 수강생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주도 아닌 타로를, 이삼십 대도 아닌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배우는 남성은 흔치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나중에야 타로 학원에 등록하게 된 경위를 그분에게 듣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강사분과 어느 사주 역학 모임에서 친분을 맺게 되었으며, 서로 자신의 분야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고 한다. 즉 물물교환 같은 거래로서, 강사분의 건강을 체크하고 처방해 준 대가로 그 타로 수업을 받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분은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강사분께서 우리 수강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수업에 나이 드신 남성분이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 남성분이 여성 대하는 걸 무척 부담스러워하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뭘 어떻게 양해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수업이 시작되니 우리가 해줘야 할 양해가 뭔지 자연히 깨닫게 되었다.    

 

그 학원은 성인 다섯 명이 수업을 받기에는 좁게 여겨지는 공간이었다. 2인용 탁자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고, 3인용 탁자가 그 두 개의 탁자를 연결해 디긋자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 3인용 탁자는 강의실 전면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었는데, 바로 그 자리가 남성분의 자리였다. 2인용 작은 탁자에 두 명씩 붙어 앉아 우향우 또는 좌향좌의 모습으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여성 수강생과 달리, 청일점 그분은 3인용 넓은 탁자에서 바른 자세로 수업을 받는 거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별 불만은 없었다. ‘여성 대하는 걸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남성’이라고 하니 그 정도는 배려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정년퇴직한 전직 공무원이라는 말을 그분 입을 통해 들었을 때는 “아니, 뭐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분이 근무했다는 직렬이 남초 집단이라는 걸 인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수십 년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이 그 정도로 여성에 대해 낯을 가린다는 건 잘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불만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자신의 현재 에너지를 알아보기 위해 각자 카드를 뽑는 시간이었는데, 그분이 뽑은 카드 중 하나가 완드 에이스였다. 강사분께서 그 카드에 관해 설명하면서, 완드가 불의 원소이므로 완드 에이스는 정력이 좋다는 의미로 리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얼른 그 남성분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분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기 때문인데 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여성 대하는 걸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남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성분 관련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분은 반드시! 기필코! 무조건! 어김없이! 딱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분이 정한 점심시간은 정오였는데, 문제는 그 시간이 타로 수업 시간 내에 있다는 점이었다. 11시에 시작해 13시 30분에 마치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업을 받다 말고 12시 정각에 다 같이 점심을 먹어야 했다.

첫 수업 때는 강사분께서 주문해 주신 김밥을 먹었고, 두 번째 수업 때는 그분이 집 근처에서 사 왔다는 충무김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바로 수업이 이어졌으므로, 우리의 점심 식사는 수업의 일부분인 양 자연스러웠다.


그동안 수많은 학원에 다녔지만, 수업을 받다 말고 식사를 한 건 그전에도 그 이후로도 한 번도 없었다.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에 대해서도 아무런 나쁜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다가 좀 황당한 상황에 연루된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뭐 대단한 사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사소한 에피소드다. 시월의 어느 구린 날에 겪은 작고 작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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