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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Nov 06. 2024

이빨 하얘지는 약의 정체


이미지는 어느 치과 블로그에서 빌려왔습니다


국민학교 때의 일이다.

나는 면 소재지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고,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여고생 언니는 근처 도시에 나가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언니는 매주 주말이면 집에 다니러 왔는데, 어느 날 언니 가방에서 신기한 물건을 발견했다.


언니, 이게 뭐야?


그거? 이빨 하얘지는 약.


그런 것도 있어?


아마 누런 이를 드러내며 물었을 것이다.

언니가 날 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응. 그걸 이빨에 바르고 있으면 눈처럼 하얗게 된대.


나는 그 약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나중에 언니 몰래 써볼 건데 의심의 빌미를 남기면 안 되니까.

그런데 언니가 웬일로 선심을 썼다.


보고 싶으면 한번 해봐도 돼.


정말? 어떻게 쓰는 건데?


그것 뚜껑 열면 붓이 들어있거든.

그 붓에 액체를 묻혀서 이빨에 바른 뒤 마를 때까지 기다리면 돼.

한 30분 정도.


그래?


나는 당장 그 액체를 위 앞니 두 개에 발랐다.

유달리 위 앞니가 커서 토끼 같다는 소릴 듣고 했는데, 누런 이빨의 토끼보다는 하얀 이빨의 토끼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곤 약이 입술에 묻지 않게 하기 위해 '김치'하는 표정으로 그 액체가 마르길 기다렸다.

30분이면 된다고 했지만, 더 하얘질 욕심으로 40분을 버텼다.

언니가 날 보며 웃기에 마주 웃어주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나중에 이를 닦고 나니 정말 이가 하얘진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언니에게 몹시 고마워서, 세탁소에 맡긴 교복도 찾아다 주고 생리대를 사 오는 심부름도 자진해서 했다.

나는 은혜 갚은 까치, 아니 은혜 갚은 동생이었던 거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도 여고생이 되어 도시로 나갔다.

어느 날 짝꿍의 책상에서 그 약을 봤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에게 말했다.


너도 미백하려고?


무슨 미백?


나는 짝꿍 책상에 놓인 그 약을 가리켰다.


아, 수정액? 수정액이 왜?


나는 '쪽팔려서' 짝꿍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 언니에게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인 데다 아무런 물증도 없는 상태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도 그 물건의 정확한 용도를 몰랐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뭔가 근사해 보여서 친구 따라 사긴 했는데, 영어로 쓰여 있어서 그냥 이빨 하얘지는 약이라고 때려 맞춘 게 아닐까... 라고 말이다.



문제의 그 '이빨 하얘지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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