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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Nov 18. 2024

웃다가 웃다가 웃다가, 교회에서 쫓겨난 날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 나는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웃음이 한번 터지면 그걸 참지 못해서 난감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것도 국민학교 다닐 때 이야기다.

당시 나는 정말 성실하게 주일학교에 나가는 어린이였다.

학교를 결석하지 않는 게 당연하듯 교회도 그렇게 생각했다.

방학 때 친척 집에 놀러 가서도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토요일이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나님에게 벌 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 같은 건 아니었고, 내 유전자에 새겨진 개근 본능 때문이었다.



아마도 겨울날이었을 거다.

이유는 잘 기억나질 않는데, 그날은 학생 예배가 별도로 열리지 않아 어른들과 함께하는 예배에 참석했다. 

그래서 교회 안이 신도들로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목사님께서 근엄한 얼굴로 설교하셨다.

짐작하건대, 아마 '인간의 가치' 그런 주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성도 여러분!

호랑이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남겨야 합니다.


아주 거룩한 표정으로, 너무나도 은혜로운 음성으로 목사님께서 외치시자 여기저기서 아멘 아멘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그 시절 나는 쓸데없이 꼼꼼했다.

어라? 국어 시간에 속담인지 명언인지 배울 때 들어본 말이긴 한데 뭔가 이상한 걸!


옆 친구에게 소곤댔다.

목사님 말씀 이상하지? 가죽은 호랑이가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하는 거 아냐?

친구가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거나 남기고, 빨리 예배나 끝났음 좋겠어.


그 순간,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참았던 웃음에 발동이 걸린 거다.


웃음을 참느라 빨개진 얼굴을 깊게 숙이고 슬픈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 혼나는 생각, 오빠랑 머리 터지게 싸우는 생각, 나중에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불경스러운 생각마저 했다.

그래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팔을 꼬집었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웃음은 계속됐다.


간곡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제게서 웃음을 거두어주세요!


하지만 내가 착한 어린이가 아니었던지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전 교인이 모인 날이라 그런지 평소 한산하던 2층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겨우 빈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1층에서부터 날 쫓아온 웃음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흐흐흐... 낄낄낄... 끄억.

웃음을 참다 참다 공룡이 트림하는 소리까지 내고 말았다.

봉인 해제된 웃음은 즉시 커다란 소음이 되었다.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예배 시간에 이렇게 떠들 거면 밖으로 나가!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빠네 반 선생님이었다.

그 화난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꺼이꺼이 웃었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예배 시간에 웃다가 쫓겨났다고 하면 엄마 박집사님에게 혼날 것 같아 집에도 못 가고, 딱히 갈 데도 없고, 교회 옆 어린이집 마당에 있는 그네로 갔다.


호랑이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이름을 남기는 게 당연해.

사람은 많지만, 호랑이는 몇 마리 안 되니까.

(한 번도 호랑이를 본 적 없던 나는 동화책에서 본 호랑이를 떠올렸을 거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서 가죽을 남기면 그 가죽으로 뭘 할까?

소가죽처럼 가방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신발도 만들겠지.


예배가 끝나길 기다리며 혼자서 그네를 탔다.

하늘로 올라갈 때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고, 땅으로 내려올 때는 사람 가죽으로 물건 만드는 상상을 하면서.



써놓고 보니 한 꼬집이 아니라 한 톨의 웃음도 자아내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애써 타이핑한 글이니 그냥 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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