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나를 차단한 걸까?
타로 길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그녀를 만난 건 어느 타로 수업에서였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생김새며 옷차림이 띠동갑보다 더 어려 보였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괜히 말이라도 걸었다간 선을 넘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질 게 염려됐기 때문이다.
전에 다른 타로 수업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한 적 있다. 수강생이 딱 세 명이었는데 서로 이름도 모르는 상태로 6주간의 과정을 함께 했다. 강사님께서 단톡방을 만들어주시긴 했지만, 한 수강생은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떠서 끝까지 이름을 알지 못했다.
네 번째 수업을 마치고 그 수강생에게 개인 톡을 보낸 적 있다. 강사님에게 묻기에는 좀 조심스러운 질문이어서 수강생에게 대신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수강생은 톡을 읽고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소위 '읽씹'이라는 걸 당한 거다. 민망한 마음이 드는 나와 달리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다음 수업 시간에 만났을 때 평소처럼 내게 말을 걸었고, 그 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 톡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때 든 생각은 이거였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먼저 말 걸지 않기!
이런 생각을 가진 내 관심 안으로 그녀가 들어온 것은 수업 시간에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털어놓은 그녀의 힘든 상황 때문이었다. 타로 수업이라는 게 어떤 문제에 대해 카드를 뽑고 그에 대해 리딩을 하는 거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상황을 말하게 된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고, 그래서 자신이 뭐든지 해보려고 시작한 게 바로 타로라고 했다. 본인 형편에선 상당한 돈을 투자했지만 현실이 막막해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고충을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녀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이해됐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녀가 다녔고 현재도 적을 두고 있다는 학원이 내가 전에 잠시 수업을 들은 곳이었다. 그 학원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곳이 돈벌이로 연결되는 수업을 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은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수강생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마음을 접었다.
그러다 다음 수업 시간에 또다시 비슷한 고민으로 카드를 뽑는 것을 보면서 오지랖이 발동했다. 며칠 뒤, 나는 카톡으로 그녀가 다닌 학원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곳 수업 방식으로는 타로 상담에 필요한 실질적인 기능을 배울 수 없다는 것, 그곳에서 내세우는 장밋빛 전망도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10여분 카톡을 주고받던 그녀가 내게 통화가 가능한지 물었다. 나는 톡보다는 통화가 편한 세대라 바로 전화를 했고, 30여 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 학원의 모든 과정을 다 마친 상태였다. 이미 상당한 수강료를 지불해 버린 그녀에게 쓸데없는 정보를 준 셈이 되었지만, 그녀는 내게 고마워하며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내가 아는 학원 중 그녀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곳을 알려주기로 하고, 그렇게 좋은 분위기로 통화를 마쳤다.
나는 알고 있는 타로 학원들에 대한 정보를 요약해서 그녀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학원 위치, 수강료, 수업에 대한 주변의 평을 적어 보내자, 그녀는 자기에게 꼭 필요한 정보라며 몹시 내게 고마워했다. 그런데 그 뒤 추가할 내용이 생겨 다시 톡을 보냈더니 한참이 지나도 읽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1이 사라지지 않아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걱정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얼굴 사진으로 돼있던 프사가 기본으로 변경돼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그늘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다음 수업 날, 학원에 가니 그녀가 와 있었다. 날 피하는 듯한 그녀를 보며 머쓱해서 좀 떨어진 곳에 앉았다.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에게 굳이 말을 걸 만큼 반죽이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수업은 수강생이 카드를 뽑아 단톡방에 올리면 그걸 전자칠판에 띄워 리딩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카드 사진을 다운로드하는 동안 강사분의 휴대폰이 전자칠판 화면에 노출되었는데, 그녀의 프사가 예전 그대로인 걸 보았다. 혹시 하는 생각에 다른 수강생 휴대폰으로 단톡방을 들어가 보니, 역시 그녀의 얼굴이 담긴 예전 프사 그대로였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그녀로부터 차단당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녀는 왜 나를 차단한 걸까?
나는 그녀를 귀찮게 한 적도, 예의 없이 군 적도 없다.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은 더더욱 없다. 그저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해줬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힘든 상황을 진심을 다해 들어줬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과정을 마치는 날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우며 그녀에 대한 의구심이나 불쾌감도 다 털어 버렸다. 어차피 잠시 수업에서 만났다 헤어지는 짧디짧은 시절인연이므로 아무런 감정도 남겨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일 년 여의 시간이 흐른 뒤 다른 타로 수업을 받으며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상대방 속마음을 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속마음이 궁금한 이런저런 사람 중 그녀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는 왜 나를 차단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카드를 뽑았다. 내가 뽑은 카드를 보며 강사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완두 님에 대해 나쁜 감정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쪽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차단한 거네요.
이상하네요. 그 학원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도 많았고, 특히 운영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거든요.
본인 감정은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그 관계가 중요한 거겠지요.
그런데 완두 님이 그쪽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니 그게 불편해서 차단해 버린 거지요.
무슨 말인지 알 듯 말 듯했다. 길이 아닌 줄 알지만 끝까지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도 그녀에게는 그 학원이 선뜻 포기하기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선뜻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 학원이 제시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일 수도, 그동안 어렵게 마련해서 지불한 학원비에 대한 본전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쪽 인연에 대한 미련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나는 그 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베푼 건 선의지만 그게 상대방에게는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