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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얼굴이 콜라비 색깔이 되면 어떡하지?

자꾸 날 치사하게 만드는 존재에 대한 분개 26화

by 완두


난 콜라비를 좋아한다.

당근도 좋아한다.

이 두 채소의 공통점은 씹을 때 오도독오도독 맛있는 소리가 난다는 것.

(전에 안주로 나온 당근 스틱 먹는 걸 본 한 직원이, '세상에서 가장 당근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콜라비가 많이 나오는 한 겨울에는 콜라비를, 그 철이 끝나면 그때부턴 흙 당근을 주문해 먹는다.

요즘은 콜라비와 당근을 같이 먹는다.

아침마다 콜라비와 당근을 손질한 뒤 가지런히 잘라 채소 도시락을 만드는 건 내 루틴 중 하나다.



그런데 요즘 내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나 먹을 것 말고 남편 몫도 준비해야 하느냐는 고민이다.

콜라비나 당근을 잘라 건네주면 아주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도 아직 단 한 번도 이걸 깎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좀 어이없게 여겨지는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제법 심각하다.

이 문제가 아침마다 나를 갈등하게 한다.


당근 스틱을 만들 때는 이러지 않았다.

감자칼로 껍질을 쓱쓱 벗긴 뒤 쓱싹쓱싹 자르면 되니까.

하지만 콜라비는 다르다.

콜라비를 손질하는 일은 난이도 최상에 해당한다.

일단 그 단단한 걸 반으로 자르는 건 손목의 힘을 쓰는 것과 함께 약간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아주 크기가 크거나 단단한 콜라비는 칼이 그 속에 박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 칼을 빼내는 일은 상당히 위험하다.

이런 이유로 콜라비 손질은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삭아삭하고 달콤한 맛을 포기하지 못해 아침마다 콜라비와 맞짱 뜨기를 하고 있다.


남편이 먹을 콜라비까지 손질하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 사람은 손이 없니?

왜 남이 해주는 것만 쏙쏙 받아먹고 있어?


대부분은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준비한 걸 나눠 먹지만, 가끔은 남편이 없는 새 후다닥 먹어 치우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져 얼굴이 콜라비처럼 붉어지곤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걱정이 된다.

이러다 정말 얼굴이 콜라비 색으로 변해버리면 어떡하지?


점심시간에 콜라비 스틱을 집어먹으며 이런 고민이나 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치사하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치사하게 만드는 존재에 대해 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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