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개 잠재운 노랫소리 30화
이번에도 목욕탕 이야기다.
집 근처 목욕탕이 문을 닫아, 다른 동네로 원정 목욕을 떠나 겪은 해프닝.
평일 이른 아침이었다.
집에서 좀 늦게 나서도 되는 출장 날이라 짬을 내 목욕탕에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내부 수리 중이었다.
그냥 포기할까 하다, 내친 김에 옆 동네 목욕탕으로 갔다.
가보니 평소 내가 다니던 곳처럼 큰 목욕탕이 아니라 작은 동네 목욕탕이었다.
그런 목욕탕이 대부분 그렇듯 그 안을 채운 사람들은 대부분 할머니였다.
일명 '달 목욕' 같은 것을 하는 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신을 하려고 세신사분을 찾으니 곧 출근한다고 했다.
이미 와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오늘만 좀 늦는 거라고 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10여 분을 기다렸는데도 나타나질 않아 매점 아주머니에 다시 물으니 곧 도착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곧'이 몇 분을 뜻하는 건지 몰라 정확한 시간을 물어도 같은 대답이었다.
"곧 도착할 거예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혼자 씻고 나갈까, 조금만 더 기다릴까...
조금만 조금만, 하다 다시 10분 정도가 흘렀고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할 즈음 세신사분이 도착했다.
세신사분은 나를 세신 침대에 눕히더니 뜨거운 타월로 온몸을 감쌌다.
그러더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겠지 오겠지, 하며 기다린 시간이 한 10분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러다간 출장에 늦을 것 같다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온몸에 타월을 덮어놔서 일어나 나가기도 그렇고, 속이 바짝바짝 탔다.
조급함이 화로 바뀔 즈음 세신사분이 돌아왔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빨리해 주세요."
급한 내 목소리와 달리 천하 태평인 답변이 돌아왔다.
"아침에 볼일을 못 보고 와서 화장실 좀 다녀왔어요."
드디어 세신이 시작됐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부글부글 화가 끓고 있었다.
여차하면 한 마디 쏘아붙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내 귓가에 조용한 노랫소리가 흐르기 시작한 것은.
작은 웅얼거림이라 처음에는 무슨 노래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참 느긋한 분이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내 몸을 씻기는 세신사분의 몸이 자꾸 내 살에 닿았다.
넉넉한 살집이 푸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졌다.
조금 전의 분노가 가라앉으며 조급함도 사라진 거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어느새 나는 그 노래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래전, 엄마 자궁 안에서 들은 것 같은 노래였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들은 적 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엄마는 귀까지 빨개지며 이 노래를 부르셨다.
찬송가 외에는 처음 듣는 엄마의 노래였다.
나는 무장 해제된 채 그 세신사분의 노래를 들었다.
봄날도 가고, 분노도 가고, 시간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