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 약의 한걸음

by 고운스나이퍼

온갖 인생 경험을 했다 자부하던 나에게도,
그녀는 버거운 존재였다.
인연과 업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인물.


살집 있는 이에게 “게을러서 그런 거지”라고 목 없이 말하고,
운전하는 분께는 “가다 사고나라”는 악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곤 하는 그녀는
옆에서 보조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난이도 최상급의 사람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적응이란 결국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어’였고,
한편으로는 옆에서 조금이라도 바꿔보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긍정적 사고와
피해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많았던 시절이라
변명해 본다.


좋은 영향을 주겠다며 노력했고,

실제로 바뀐 점도 있었다.


최소한
기존의 좋지 않던 언행으로
다시 되돌아오지만 않기를,
그 정도만 바랄 뿐이었다.


그녀는 내 회사의 대표였고,
일과 돈 버는 능력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주변 사람들은
“돈을 벌려면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속에는
결코 부러움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들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
그 점 하나만은 인정한다.


그녀와 나는
일에 있어서는 최상의 파트너였다.
열 명의 몫을
둘이 해낼 정도로
둘 다 일중독의 선두주자였으니까.


그러나
신은 다 주지는 않는가 보다.


다 가진 듯한 그녀는
사실상
내게 배울 점 하나 없는
단지 상사일 뿐.


그런 내 마음이 통해
결과적으로 일이 이렇게 됐나?
하는 잡생각도 든다.


‘평생 몇 사람에게 나누어 겪을 일을,
이 한 사람으로 대신 겪는 거라 생각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하루를 넘겼다.


퇴사한 뒤에는
나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말도 안 되는 모함도 더해졌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내 인생의 등장인물에서 사라졌고,
지금 이렇듯
대본도 하나씩
새로운 글로 덧씌워
지워나가고 있다.


하소연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결국
내 감정은
내가 추스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심을 다시
나에게로 가져오자,
이제야
조금씩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직장 생활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깊은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동안의 갈등과
그녀의 독특한 성격은
돌이켜보면
나를 성장시킨 과정이었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내 견해를 보태는 순간
사태만 커질 뿐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그녀는 내게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과정 속의 그녀는
‘독’이었을지언정,
결과는
나를 단단하게 만든
‘약’ 같은 존재로 남기기로.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결이 다른,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자유로운
내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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