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물에 빠뜨리려면, 내가 먼저 빠져야 한다

by 고운스나이퍼

“남을 물에 빠뜨리려면, 먼저 내가 물에 빠져야 한다.”
여사님은 이번 일을 겪는 내게 이 말을 자주 하셨다.
나를 위한 조언일 수도, 때로는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오래 살아온 건 아니지만,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옛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것.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내게 연달아 벌어진 사건들은 충격을 넘어
새로운 자아 하나를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도 나는 ‘공격에 대한 친절한 방어’를 택했다.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때만큼 고마웠던 적도 없었다.


노동부, 산재, 그리고 두 건의 형사 고소까지.
살면서 마주할 거라 상상도 못 했던 문들을 연달아 통과하면서도
나는 흔히들 말하는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보다
“사람은 이렇게도 행동할 수 있구나.”라는 허탈함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솔직히… ‘이제 어디까지 가려나’ 하는 묘한 궁금함도 있었다.


그때의 상황에서 누가 피의자이고 피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다만 내가 내게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
그것만이 내가 붙잡은 산소호흡기 같은 의지였다.


첫 번째 고소장을 본 형사님은 말했다.
“이런 건으로 고소가 가능하긴 한데… 실제로 하는 건 처음 보네요.”
두 번째 고소장을 본 형사님은 또 물었다.
“또 같은 곳인가요?”
그렇다. 또 그곳이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을 곳은 없었다.
내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는 결국 내가 감당해야 했다.


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그 순간만큼은 어떤 책 보다 ‘나 자신’을 더 믿기로 했다.
증거를 모으고, 사실을 적고, 흔들리지 않기.

변호사 대신 내가 나를 대변했다.
두려웠지만, 결국 가장 믿음직한 변호사는 ‘나’였다.


결과는 두 건 모두 증거불충분, 무혐의.
드라마 같은 반전은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지켜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런 능력이 있는 줄 알았으면, 법 공부라도 해볼걸.’
법조계 사람이 들으면 기함할 이야기지만,
그만큼 내 자기 보호 스위치가 끝까지 눌린 상태였던 것 같다.


거창한 용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어느 순간엔 스스로의 변호사가 될 수 있고,
나는 그렇게 하나씩 나를 지키며 단단해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미워했다면
그 오랜 시간은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었을까 싶다.


왜 먼저 물에 빠졌을까.
정말 빠져나오지 못할 줄은 몰랐던 걸까.
아니다.
그 사람은 “돈이면 다 된다”는 신념으로 사는,
애초에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아, 그만 생각해야지.
정신 건강에 해롭다.
다시 생각을 돌린다.
참… 사람은 인생을 어렵게도 산다.


그때의 나는 단 한 가지,
묵묵히 답변서를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미움도, 복수도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은 결국 원인 제공자에게 돌아가는 법.
나는 흐름에 맡겨두고, 우선은 나부터 살기로 했다.


과거에 머물려는 나에게,
오늘의 낮과 밤을 지켜내라고 작게 응원해 본다.


그 흔한 말, “파이팅.”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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