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본 것 같은
우울증 자가진단 체크에서
머리를 감지 않으면 가능성이 있다는 문항에
왜 그리 마음이 꽂혔는지.
오늘 하루의 일과가 이것이 다인 것처럼
나는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증명하듯
괜히 더 열심히 머리를 감는다.
그 체크 진단에 화장은 들어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던 일상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비에 젖은 옷을 벗어내는 것처럼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바빠?’ 하고 건네던 지인들의 통화 첫인사가
이제는 ‘뭐 해?’로 바뀌고
언제부터인가 자발적인 외출이
부쩍 어려워졌음을 느낀다.
주위 지인들에게 틈틈이 구조 요청을 부탁한 바 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휴대폰마저 잠수를 탄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데
그 무엇이 자발적으로 움직일까.
분, 초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나인데.
요즘의 시계에서는 초침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내 방의 시계는
분침도 꺾어버려야 하나 보다.
시침만 덩그러니 남은 시계는
고장 나 보이려나?
얼마 만인지 모르는 외출에
무심코 발을 디뎠다가 당황한다.
계절이 바뀌었다.
시간의 변화가 아닌
계절의 변화.
이게 몇 번째인지.
흔히들 말하는 계절의 감각에 대해
선물 포장을 바라보듯
그저 그렇게 바라봤다.
문득 계절을 나타내는
낯선 이의 글귀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절판된 장편소설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어가던 중
갑자기 책의 일부가
불타버린 느낌이다.
나에게 계절의 변화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숨이 차올라도
더는 늦어지지 않게
나 자신을 계절의 속도에 맞추는 수밖에.
그러기 위해 오늘도
멈출 듯 멈춰지지 않는
시간 속을 살아간다.
겨울은 추위에 얼어
내 속도를 기다려주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