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에
나라는 사람의 대응은 분명했다.
“사과하지 마세요.
사과는 당신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
사회적 만남 속에서
비겁함을 넘어
비열함을 내포한 침묵에는
사실 확인과 함께
인연의 절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난처함과 미안함을
침묵으로 대신하는
그 당연함에는
나는 ‘지켜봄’이라는 거리 두기를 선택했다.
결정이 빠른 나조차
그 울타리만큼은
부술 수 없었다.
육 남매라는
적지 않은 가족 구성원.
최소 세 살에서
최대 이십 년 가까이 나는
나이 차의 형제들 틈에서
소위 말하는
따돌림을 당했다.
시기가 좋지 않다.
왜 하필,
비슷한 상처일까.
완치된 줄 알았던 증상들이
한꺼번에 다시 일어나
모든 것을 멈추게 했고
나는
칩거에 들어갔다.
친구는 말한다.
화를 내라고.
예전의 너라면
이럴 때 슬퍼하는 게 아니라
화를 냈을 것이고
그게 맞다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나, 너무 비참해.
이건 슬픈 게 아니라
비참함이야.”
빠른 결정과
심플한 해결을 추구하던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우유부단함을
질색하던 내가
비슷한 상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극히 외향인으로 살다가
오랜 사회생활 속에서 상처받고
요양 차
부모님을 찾았던 동생이
가족에게 다시 상처받고
잠수를 탔다.
그런데
잠수 탄 내가
무안하게도
관심은 없었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던 말이
이렇게 실감 날 줄은
몰랐다.
가족에 대한 기대를
이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덜 내려놓았나 보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동생도,
가족도 아닌 모양이다.
부모를 돌본다는
공통의 관심사로
함께 움직이는 요즘에도
그들은
여전히 침묵한다.
나는
유령인가 보다.
그들이 필요할 때만
보이는.
화법도 예의에 포함되고
사람은
생각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아직
내 가족인 그들은
최소한의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사과조차 받지 못한
내 마음은
이렇게 불편한데
그들의 마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편안한가 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어쩌면
지운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