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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ul 13. 2021

영화 <미쓰 홍당무> 감상평

이기심과 순수함의 한 끗 차이


01.

영화 <미쓰 홍당무>는 보기 불편했다. ‘공감성 수치’가 심한 내가 보기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주인공이 뭐 이래’라는 생각이 돌덩이 됐고, 떠오르려는 생각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이 생각이 고마웠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나에게 <미쓰 홍당무>는 저수지 같은 영화다. 깊게 생각하면서 들어가면 안 되는 영화, 그래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생각들에 안도하며 모른 체했었다. 영화를 복기하면 조용하고 깊은 물에 들어가 “꼬르륵”하고 잠수를 하는 기분이다. 글을 쓸 때 이런 기분이 들면,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온다. 하지만 영화를 볼 때 “꼬르륵”거리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꽤꼬닥” 하고 영원히 갇혀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번에 극을 보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잠수가 싫어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다. <김군>을 피했더니 <미쓰 홍당무>고, 또 피하면 <에일리언>이다. 덕분에 영화 편식을 없애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02. 이름을 불러주니 꽃이 되었다.

영화에서는 반복적으로 양양(공효진)은 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한다. 오프닝에 “미숙씨”라고 부르는 피부과 의사 박찬욱에게 “양미숙양”으로 불러주길 요청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어학원에서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가르치냐는 물음에 양미숙(공효진)은 “당신 누구야! 내가 뭘!”이라고 되받아 치기도 한다. 심지어 극 후반에 이르러서는 “……내가 나니까, 다들 일부러 나만 무시하고”라고 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양미숙이 원하는 ‘존재에 대한 인정’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길 소망하고, 타인에게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미쓰 홍당무>는 이런 인정을 원하는 장면을 교묘하게 열등감과 얽히게 만든다. 열등감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자신이 남보다 못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느낌”이라 정의 내린다. 이걸 비춰본다면 양미숙은 전혀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비상식적인 일을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라면 자신이 하는 일을 합리화하며 삽질을 한다. ‘양미숙이 왕따라는 환경과 같은 과목을 담당하는 이유리(황우슬혜)에게 여기저기 치인다’라고 관객(등장인물)이 극(양미숙)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 동기화 되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양미숙에게 열등감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양미숙이 서선생님(이종혁)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서선생님이 원성여고 졸업여행 때 양미숙의 행방을 타인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양미숙은 그때 선생님께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점프를 했다. 그 이후 짝사랑을 시작했을 것이고, 재재재재 작년에 택시에서의 사건과 종무시간에 졸지 말라는 문자 뒤에 붙은 이모티콘으로 쌍방향 사랑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양미숙은 열등감 대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03. ‘고도’를 기다리는 다는 것

극이 진행되면서 종종 교장선생님(라미란)이 등장하며 명상과 조용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양미숙은 “그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명상과 조용함을 거부한다. 학교라는 세계의 절대자는 교장 선생님인데 어쩌자고 양미숙양은 그걸 반대했을까. 그래서 그녀가 러시아어 대신 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은 아닐까. 교장선생님은 양미숙에서 교과목을 바꾸는 벌칙을 줬으나, 감독은 말을 듣지 않는 그녀에게 ‘홍조’라는 벌칙을 준 것처럼 보인다.

서종희와 양미숙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문학책으로 축제 준비를 한다.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 ‘고도’라는 소망은 각기 다르다. 양미숙이 바라고 기다리는 고도는 ‘타인의 인정’이다. 그러나 세계는 양미숙에게 타인의 인정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그녀 스스로에 대한 인정)을 ‘고도’로 선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벌을 주듯 양미숙 양이 볼이 빨개질 때는 대부분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할 때’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해서 양미숙에게 ‘왜 그랬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때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다. 이렇듯 세계는 양미숙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질문을 하고 시간을 부여하며, 자신을 돌아볼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것을 부정하며 소리를 지를 때 그녀의 볼은 빨개진다. 영화 후반 학교의 또 다른 갑인 학부모(서종희의 엄마, 방은희)가 양미숙에게 10분이라는 명상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자 그녀는 세계가 바라는 선택을 하며,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박찬욱 의사를 찾아가며 그녀는 여전히 변함이 없음을 암시한다.


04. 이기심은 함께하는 동지가 있어 상식이 된다.

양미숙은 서종희(서우)를 만나고 나서야 존재를 인정받는다. 음식(감자)을 먹는 장면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술을 마시거나, 식사 준비 장면 통해서 먹는 장면이 암시되는데 양미숙은 그런 장면이 없다가 유일하게 서종희와 만나고 투닥거리며, 음식을 먹고 옷을 갈아입는 등의 행위를 한다.

이 콤비는 이유리를 싫어하며, 서종철(이종혁)과 갈라놓고 싶다는 공통목적을 갖지만, 양미숙은 서종희에게 서종철에 대한 마음을 서종희에게 솔직하지 말하지 않았기에 순수하지 못하다. 이 관계는 거짓이 밝혀지며 둘의 사이가 깨질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이내 관계는 원상 복구된다. 양미숙과 서종희가 탄력성 좋게 관계가 복구될 수 있었던 것은 둘이 헛짓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저지른 짓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미숙은 삽질하는 소리를 내뱉는 와중에 삽으로 땅을 퍼내게 시켜도 그게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고 순수하다. 그때 당시 그녀에게 두 사람의 사랑은 쌍방향의 것이고, 그것이 그녀에게 그럴 만한 상식적인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 뻔뻔하고 당당함은 이기적이면서도 순수하다. 서종희는 어떠한가. 자신의 탄생과정에 대해 포털지식인에 질문하며 그것을 그대로 믿을 만큼 어리석고 순수하다.

두 사람이 순수함을 바탕으로 맹목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을 보며,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영화 <미쓰 홍당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이기적이다. 왕따를 시키는 학생,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 심지어 이유리 조차말이다. 그녀는 양미숙이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양미숙이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서종철의 아내 성은교(방은진)만이 다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미숙에서 10분이라는 시간을 줄만큼 여유가 있고, 미숙과 딸 종희의 잘못을 되돌릴 기회를 주는 사람이며,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는 유일한 인물로 영화 속에서 그려진다.


05. 기괴하고 사랑스러운 미숙아, 고맙다.

영화를 보며 공감성 수치를 느낀 이유는 그때 당시 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길 원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실은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못생기고 사랑스럽지 않는 인물이 고군분투 살아남는 것을 보며 웃으며, 그녀를 이해할 정도로 마음이 너그럽지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마음에 있던 돌이 아주 약간 밀려난 것 같다. 그리고 걷어낸 자리엔 새로운 생각이 가득 찼다. 그래도 여전히 미숙은 기괴하고 괴상하고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다. 나는 그렇게 양미숙처럼 치열하고 당당하고 순순하고 맹목적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쓰 홍당무>를 떠오르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영화 관람이 변한 기억과 양양에 대한 생각이 남을 것 같다. 걷어낸 돌덩이는 기념으로 남겨둬야겠다. 그래서 훗날 또다시 이런 극작품이 생긴다면 편견을 무시하고 “꼬르륵” 하고 깊게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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