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스트앤본>을 봤다. 영화를 보며 타인들이 하는 ‘육체의 손상을 채우는 정신’ 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것에 대한 생각이 타인이 하는 생각과 동일선상에서의 ‘육체’에 대한 것임을 부정할수는 없다. 작품에서는 이 ‘육체’라는 소재를 제거한 채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이미 타인들이 했던 생각의 족적을 따라가기 바쁜 나를 발견했다. 비평이라는 것이 영화에 리뷰어의 생각을 덧입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왕 생각을 덧입힐 것이라면 조금은 나의 것으로 이야기를 채워보려고한다. 그렇게 타인의 흔적을 따라가던 중에 이상한 지점이 생각났다. 그것은 여성, 남성 그리고 고래라는 지점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남성(알리)과 여성(스테파니)의 신체 훼손에 대한 감정적 치유와 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리를 잃은 스테파니에게는 자존감, 손가락이 부셔진 알리에게는 아들이라는 가족을 얻는 것을 각기의 보상으로 극이 진행되며, 이 과정중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 사랑에 대한 지점은 굉장히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 모호함이라는 것이 ‘왜 사랑에 빠지게 됐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것은 아니다. 두사람의 결론은 사랑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맥락상 당연한 수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 사랑이라는 지점에 모호함을 느끼는 것이고, 두 남녀의 사랑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영화<러스트앤본>에서 스테파니가 처음이 알리에게 이성의 감정을 드러냈을때를 상기해보자. 이때 알리는 출장가능하냐고 되물으며 스테파니를 보고 웃는다. 그리고 여성은 그런 남성을 보고 살짝 미소를 띄운다. 나는 스테파니가 미소를 띄운 이유는 이성의 답변을 들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이성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기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스테파니의 뒷모습을 잡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 모습을 말이다. 카메라는 왜 그런 이동을 한 것일까? 이때 카메라의 이동방식은 사고를 당한 후, 아쿠아리움에 방문후 돌고래를 바라보는 장면과 맞닿아 있다. 나는 스테파니와 알리 두 육체의 표면의 접촉을 통한 그들의 보상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개별적인 인물에게 돋보기를 갖고 그 인물을 세밀하게 바라보려는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세밀하게 바라볼 대상으로 선택한 인물은 영화속 스테파니라는 여성캐릭터다.
다시금 하고자하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 스테파니라는 여성캐릭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타인에게 각인을 시키려는 것으로 영화에 첫 등장을 한다.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클럽에 간 후 벌어지는 소동속에서 남자주인공을 만났고,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 것인가 그리고 단순히 다리를 드러내고 클럽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 후에 일어날 사고를 암시하는 복선인것으로 그쳐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이 장면을 통해 알수있는 것은 스테파니가 갖는 여성이라는 실존적인 위치에 대한 확인을 지속적으로 하려고한다는 것이다. 스테파니와 알리가 바다 수영을 하고 삶에 대한 의욕을 찾고 의족을 하고 처음 찾은 장소는 사고를 당한 아쿠아리움이다. 그 아쿠아리움에서 동료를 만나고,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돌고래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이때 그녀는 비록 의족이지만 다시의 두 다리로 서서 돌고래와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집 테라스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고가 있기 전 까지 여성은 타인에게 사랑을 받아야하는 존재 혹은 돌고래 쇼를 진행하는 사육사라는 실존적인 위치를 가진 존재일 뿐이며 그것에서 자존감을 찾기 급급한 모습만을 보인다. 그러나 사고 이후 알리을 만나 그녀의 자존감과 실존적인위치는 서서히 변화한다. 알리가 길거리 싸움을 하며 두려움에 떨며 경기에서 지고있을때 스테파니는 보란듯이 남성을 응원하기 위해 의족과 지팡이를 이용해 차에서 내려 경기하는 그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것을 대변한다. 이 지점은 고래를 움직여 쇼를 진행하던 위치에 있던 여자가 사고를 당한 후에, 고래를 대체할 만한 인물로서 남성을 찾은 것이라 생각될 만한 지점이다. 물론 고래와 알리의 물질적인 형체로 동일하다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고래와 알리는 스테파니에게 에게는 사랑의 대상인데, 여기서의 사랑은 자기애(自己愛)를 바탕으로 한다. 여성으로서의 인간의 위치, 돌고래 사육사로서 혹은 경기를 관리하는 매니저 등의 여러 가지 사회적, 존재적인 위치를 확인시켜줘야하는 수단으로서 고래와 알리는 그녀에게 중요한 대상들이다.
약간 이상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이야기를 위해 인물들에게 신체 훼손을 시켜야하는 영화에 대한 언급하고 싶다. 영화는 왜 인물들에게 신체 훼손 혹은 상실을 경험시켰는가 라는 것이다. 사고라는 사건으로 전개되기에 윤리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인물들에게 이런 경험을 시킨이유는 극속 인물들은 신체의 훼손을 통해서 자신이 갖고있었으나 몰랐던, 혹은 사건으로 인해 더 커져버린 상실감의 실체에 대해 인지할수있을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여성에게는 찾으려고 노력해도 찾지 못했던 감정의 공허, 남성에게는 감정의 반응이 부재하는 지점에 대한 일깨움을 주기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가 갖는 신체의 접촉 혹은 영화의 육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수 있겠으나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에는 능력이 부재하므로 그저, 인물들이 그렇게 하게 된 계기와 맥락상에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