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부 아프리카' 손휘주 저자 인터뷰
지도 한 장이 필요해서 서울에 올라와 케냐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덧 네 차례에 걸쳐 동남부 아프리카 14개국을 300여 일간 두 발로 다녔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동남부 아프리카: 지리 포토 에세이' 저자 손휘주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8년 전 처음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던 자신에게 알려준다는 생각으로, 필자의 인터뷰에 기쁘게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아프리카를 꿈꾸는 예비 여행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그의 말에서 겸손함과 자신감이 묻어났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리학도가 되어 여행과 답사를 자주 다녔고, 그러다 우연히 케냐를 만났어요. 그때 케냐의 자연과 문화에 매력을 느꼈고, 동남부 아프리카의 지리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동남부의 여러 국가를 다녀왔고, 블로그 포스트나 책으로 아프리카 콘텐츠를 만들어 왔어요. 현재는 네 번째 답사기를 정리하며 동아프리카의 도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공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지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실제로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지리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를 깊게 생각했던 것이 편견을 깨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단순히 감상하지 않고 '왜 이렇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거죠. 삶의 모습에는 기후, 지형, 역사, 경제 등 다양한 것이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런 요소들을 종합해서 관계와 맥락을 보려고 해요.
그리고 지리학도는 공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퍼즐처럼 공간을 쪼개고, 합치고, 연결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다양성을 볼 수 있었어요. 다른 학문도 아프리카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죠. 수많은 국가와 지역이 그곳만의 언어, 문학, 음악, 미술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프리카를 다섯 차례 다녀오셨어요. 본인의 경험이 일반 아프리카 관광객의 경험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도시는 물론 시장, 터미널, 종교시설, 학교 등 어디든 가보려 했어요. 농촌이나 산촌에도 자주 찾아갔죠. '지리학'도 다루는 범위가 너무 넓어, 저는 특정 주제로 깊이 있는 이해는 못했습니다. 다만 공간적 균형을 맞추고, 지역적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제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보다 좋다거나 중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방식이나 관점이 달랐다는 뜻이죠.”
나이로비의 슬럼인 키베라에 다녀와서 남긴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키베라는 어떤 곳이었나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밀도 높은 주거지역을 안갈 수 없었습니다. 제게는 키베라가 나이로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죠. 열악하고 위험하다는 소문만 듣고 조심스럽게 가보았어요. 실제로 인프라 부족으로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병원, 교회 등 생각보다 다양한 시설이 있었어요. 커뮤니티를 이루며 청년들이 좁은 골목길의 수도를 정비하는 모습도 보았어요. 슬럼이 도시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구나,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의 보금자리구나, 더 많은 기회를 위해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여행만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대화의 기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기계나 매표소에서 버스표를 사는데, 누군가와 긴 대화를 하는 경우는 없지요. 아프리카에서는 터미널을 찾고, 가격과 행선지를 묻고, 다른 손님들을 기다릴 때 대화를 나눌 일이 많습니다.
다른 매력은 아이들의 동행입니다. 농촌, 산촌에 가면 아이들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다녀온 유럽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혼자 걷는다고 아이들이 동행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많아요.”
듣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여행에서 꼬마 아이들과 어울린 사진을 찍어서 올리곤 하잖아요? 그게 괜한 게 아니에요.
“네, 맞아요. 그런데 처음에는 비판적인 생각도 했어요. 동정심 유발을 위한 빈곤 포르노나 사진 자체가 상품이 되어버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예민할 필요가 있었지요. 그러나 아이들도 저도 우연히 만나 자연스럽게 놀고, 함께하는 게 그냥 좋은 거예요. 그러다 보면 같이 사진을 찍을 수도 있잖아요? 사진에 이야기와 추억도 담기고요. 수많은 아이들이 저의 또 다른 편견을 깨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담은 사진들은 그 아이들의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최근 스마트폰과 연계된 플랫폼의 개발과 항공교통의 확장으로 젊은 세대의 아프리카 여행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때 안전·치안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요. 안전·치안 정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외교부의 여행경보단계를 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도 수시로 찾아보고, 때로는 다른 국가의 해외안전여행 사이트까지 찾아봅니다.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엄격하게 지정한다는 걸 이해해야 해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만 생겨도 여행경보단계가 바뀝니다. 그래서 경험자, 현지인의 조언을 함께 참고하는 게 좋습니다. 블로그, 커뮤니티 등의 자료를 보면 여행경보단계에서 얻기 어려운 현지 정보들이 많아요.”
*손휘주씨가 종합한 안전·치안 정보: blog.naver.com/hwlju007/221445622914
그런데 예비 여행자는 미디어에서 접하는 극단적인 정보로 치안 수준을 가늠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럴 때 발생하는 두려움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 가본 사람의 두려움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던 저도 그랬어요. 그렇지만 두려움 때문에 못 간다면 아쉬워요. ‘실제’ 지역을 보지 못한 느낌이라고 해도 될까요? 직접 경험하면 두려움을 줄일 수 있어요.
참고로, 언론의 특징을 말해주고 싶어요.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를 쓸 수밖에 없어요. 한국의 평범한 인물이 다른 국가의 뉴스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죠? 아프리카에는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많은 국가,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안전한 곳들이 있습니다. 외교부 여행경보단계를 보아도 안전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많고요.
두려움을 조절하는 것에도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두려움에서 비롯된 조심성이 안전한 여행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여행을 포기할 만큼의 두려움은 아쉽지만, 저는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편견을 깨자고 하면서, ‘위험하지 않다’고 답하지 않는 것은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데요?
“'아프리카는 위험하다'라는 말은 아프리카의 모든 곳이 위험하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위험한 곳도 있고, 위험하지 않은 곳도 있어요. ‘아프리카는 위험하다’라고 할 수 없듯이, '아프리카는 안전하다'라고도 할 수 없어요. 대륙 스케일(아프리카)의 주어를 사용하는 걸 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케냐는 위험하다’는 어떤가요?
“문제가 있는 표현이죠.”
'나이로비는 위험하다'는요?
“(웃음) 저의 설명이 짧았습니다. 인터뷰어님의 질문이 대륙, 국가, 도시 스케일로 줄어들었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스케일에 닿으면 어떨까요? 개인 스케일에서는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똑같이 몇 년을 살아온 현지인도 서로 다른 치안 정보를 말해요. 한국인을 포함해, 외국인 거주자의 정보도 모두 다르죠. 누군가는 택시만 타지만,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조깅을 합니다. 그래서 특정 지역의 위험성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경험자나 현지인의 조언이나 정보를 모아서 여행 준비를 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스케일(scale): 특정 문제에 대한 접근 범위, 즉 공간적 범위
그렇다면 우리는 아프리카의 안전·치안 정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현지 정보를 접하는 것이 중요해요. 킬리만자로를 간다면 탄자니아 모시나 아루샤로 갈 거잖아요? 그럼 그곳의 정보를 찾아야 해요.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갔다는 걸 알게 되고,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낄 거예요. 비싼 투어 비용을 놓고 여행사와의 협상할 때 무엇이 중요한지도 알게 되겠죠.
두 번째로, 정보를 비판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지인마다 정보가 다르다고 했잖아요? 이 설명들도 저의 개인적인 작은 의견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인터뷰이는 젊은 남성의 입장에서, 동남부를 중심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의 견해와 관점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비판해본다면 더 좋고요.”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경보단계에 따른 ‘3단계 적색경보(철수권고)’ 발령 지역을 여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권장하지 않습니다. 3단계의 권고 사항은 긴급한 용무가 아니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결정에는 질병, 정치적 불안, 분쟁 등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 난민캠프 봉사자, 군인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가야겠지요.”
*외교부의 여행경보제도는 일반적으로 1단계 남색경보(여행유의), 2단계 황색경보(여행자제), 3단계 적색경보(철수권고), 4단계 흑색경보(여행금지) 으로 나뉜다.
제 질문의 요지는 '특별한 사유 없이' 여행하고 싶어 하는 경우였습니다. (웃음)
“일단 권장하진 않습니다. (웃음) 현지 사람들의 조언, 경험자들의 경험에 근거한다면, 가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는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2013년에 케냐 동부 해안의 라무섬 북쪽은 3단계였어요. 그런데 모든 케냐 사람들이 동부 해안이 안전하다고 했서 갔지요. 현지인들이 위험하다고 했다면 안 갔을 겁니다. 에티오피아 북동부의 다나킬은 어떤가요? 3단계 지역이지만 많은 여행자가 찾는 세계적인 국립공원이죠. 에티오피아와 케냐 국경의 대표 관문인 모얄레는 어떤가요? 3단계 지역이지만 동남부 아프리카의 육로 종단 경로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죠.
그래서 외교부 여행경보단계는 물론, 경험자나 현지인의 조언을 찾아야 합니다. 3단계 지역에 많은 사람이 간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여행사나 국립공원과 협력하는 군인이 동행한다든지, 곧 2단계가 될 만큼 안정적이라든지, 국지적으로 치안이 양호하다든지, 말이죠.”
정보가 부족한 지역에서 교통과 숙박 해결은 많은 예비 여행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입니다. 책과 인터넷에 나와 있지 않은 곳은 어떻게 여행할 수 있나요?
“아프리카 여행 유경험자의 질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하고 말씀드릴게요. 첫 번째는 지도입니다. 구글 맵스를 비롯한 지도에는 책과 여행자들의 경험에는 나오지 않는 마을, 도로, 터미널, 숙소 정보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현지 사람들의 도움입니다. 지도보다 중요해요. '거기 당연히 갈 수 있지' 혹은 '거기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버스 다녀'와 같은 현지 사람의 조언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워요. 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 좋아요.”
단순히 보는 관광, 뻔한 장소와 경로를 넘어 현지의 문화를 체험하고 느끼는 데 좋은 방법을 알려주세요.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관광지만 보거나 투어업체와 협상이 주된 대화면 피곤할 수 있어요. 그래서 버스를 탔을 때 옆에 앉은 사람이나, 식당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한 이동과 소비에 그치면 케냐 사람들이 우갈리, 차파티, 필라우 중에 뭘 자주 먹는지 헷갈리죠. 5분의 대화만으로도 현지 문화를 알 수 있어요. 지역, 직업, 사회경제적 계층, 개인적 선호 등 여러 이유로 자주 먹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을요.
두 번째로, 봉사 프로그램을 가진 숙소들이 있어요. 며칠씩 머물면서 현지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이국적인 문화를 접하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잖아요. 그런데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은 무례한 행동으로 비춰질 때가 있어요. 인물 촬영에 조심하는 편인가요?
“많이 조심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찍고 가버리는 여행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우리나라에서 초상권이 중요한 것과 비슷해요. 제 책에도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서 찍은 사진들이 많지 않아요. 책의 배경인 16년 답사에서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으니까요. 몇 안 되는 인물 사진들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짧게라도 동행했다던가, 대화를 나누었다던가, 촬영에 대한 동의를 얻었을 때지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해요. 옥수수 파는 장면 하나를 찍더라도, 상인에게 다가가서 인사하고 하나라도 사 먹고 무언가를 알아가려고 행동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게 좋아요.
카메라가 여행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저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카메라부터 꺼내지는 않아요. 대화만 나누다가 숙소로 들어와 사진을 찍지 못한 걸 아쉬워할 때도 많지요. 괜찮아요. 그 사람이 편했으면 된 거고, 그걸 기록할 수 있는 저의 손이 있으니 된 거죠.”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열린 마음과 안전입니다. 마음을 연다는 건 쉽지 않아요. 제게도 여전히 아프리카에 대한 편협한 생각과 정보가 많아요. 여행과 답사를 주로 다녔으니 국제개발협력, 기업, 학술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견해나 해석이 다른 건 자연스럽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여행이라 여기려고요.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이 경험하고 서로 비판할 때,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전하고 조심스럽게 제안 하나를 해볼게요. 저는 아프리카가 가난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에 마음속 지도를 검게 칠했습니다. 답사 중에 편견을 깰 때마다 검은색을 닦아내며 예쁘게 꾸몄어요. 여러 지역을 다니며 편견을 깨고, 또 깨면서 천천히 아프리카를 알아간 거죠. 그러나 한번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보지 않은 곳은 ‘검은 땅’이라는 생각, 직접 가야만 그곳을 그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생각은 편협하다고요.
독자에게 제안하고 싶은 건 이거에요. ‘정말 위험하고 가난할 거야’라고 생각하기보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어떤 역사와 시가 흐를까?’라고 물어보아요. 마음 속에 백지도를 들고 가서 경험한 지역에 자신만의 이야기로 색칠하는 것입니다. 가보지 못한 주변 지역은 흰색으로 남겨두거나 옅은 스케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사 없이 떠나라는 조언이 아닙니다. 타지와 타인 앞에서 자세를 낮춰보자는 제안입니다. 상상 속의 아프리카는 내려놓고 안전만 챙기면 돼요.”
끝으로 예비 여행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아프리카를 오래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과 부딪히는 순간도 많고, 사람들과 너무나 행복하게 보내는 순간도 많을 거예요. 그 과정 자체가 여행이라 생각하며 열린 마음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와 우리 집만큼, 아프리카 사람들과 그들의 보금자리도 소중하다는 걸 기억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