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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피셜 지오그래픽 Aug 02. 2021

남해 4대 명산을 찾아서

망운산 · 납산 · 금산 · 응봉산


때론 멀리서 보아야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비단 사람관계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산이 그렇다. 알프스의 하얀 설산을 보라. 한겨울의 대청봉도 좋다. 무시무시한 추위와 폭풍 속에선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새가 없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여산진면목>에서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不識廬山眞面目), 내가 이 산 속에 있어서라네(只緣身在此山中)”라고 말했다. 피서철을 맞아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 그러나 거리의 미학을 아는 자, 바다를 보러 산으로 간다. 바다 조망이 정말 멋진 경남 남해는 대한민국 섬 산행의 일번지다.


남해도는 부속 섬인 창선도를 제외하고도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물건리 방조어부림과 이순신 장군의 최후 격전지 노량, 죽방렴 멸치잡이로 유명한 지족해협, 금산 보리암, 다랭이논과 같은 전통경관과 역사유적을 간직한 유서 깊은 섬이다. 그러나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창선교, 삼천포대교에 이어 남해-여수 해저터널 건설까지 추진되면서 이제는 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됐다. <구운몽>을 지은 서포 김만중이 유배를 왔을 만큼 오지였던 남해는 골프장과 스포츠파크 등 레저휴양시설까지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보물섬’이 됐다.


남해의 진산, 망운산


망운산(786m)은 남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높은 만큼 산능선에 구름이 자주 걸린다. 그래서 ‘구름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운(望雲)이란 이름이 붙었다. 서쪽에서 남해읍을 보기 좋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읍에서 걸어서도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여서, 정작 남해 주민들은 금산과 납산(호구산)의 명성에 가려진 망운산을 즐겨 찾는다.


읍내에서 관대봉(595m)까지는 약 두 시간 거리다. 그 중간에 편백나무숲이 있다. 편백나무는 일본 원산으로 ‘히노끼’로 불린다. 한여름 푹푹 찌는 대낮에 편백나무숲에 들어서면 은은한 사우나 냄새가 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편백림은 산림욕으로 좋다. 산림욕(浴). 말 그대로 산림에서 목욕하는 것인데,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몸을 깨끗하게 씻는 셈이다. 나무가 발산하는 향균물질 피톤치드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


편백림 산림욕지구


관대봉은 정상보다 조망이 좋다. 남해읍내가 한눈에 담기기 때문이다. 그 주변으로 창선도 지족해협, 사천 와룡산, 삼천포 화력발전소, 하동 금오산이 보인다. 정상에서 KBS송신탑까지의 능선은 임도이며, 오른쪽으로 광양제철소와 여수의 풍경이 펼쳐진다. 광양만을 빠져나온 장난감 같은 선박들이 저 아래서 기적소리를 내며 유유자적 떠다닌다.


남해에는 일 년에 1,700mm의 비가 내린다. 전국평균(1,100mm)보다 1.5배 더 내린다. 태풍에 직접 영향을 받아 그중 절반이 여름철에 집중된다. 그래서인지 정상에서 수리봉, 학성봉, 물야봉을 거쳐 서상항으로 내려가는 길은 흡사 정글이다. 거미줄을 헤치고 산모기에 쫓기느라 좀체 속도가 붙지 않는다. 따라서 등산로가 잘 정비된 화방사와 남해읍을 들머리와 날머리로 삼는 것이 좋다.


서상항에는 2012년 여수 엑스포가 끝나고 여수-서상을 잇는 서상여객선터미널을 개조한 서상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단출하지만 편안히 쉬기 좋다. 고단했던 하루를 물회 한 그릇으로 달래면 첫날 일정은 끝이다.


관대봉에서 만난 남해고등학교장 박영남씨가 남해의 지리를 설명하고 있다.


파노라믹 납산


남해는 특이하게 생겼다. H 모양이다. 섬이 동그랗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리아스식 해안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리아스(Rias) 해안을 닮아서 리아스식 해안이다. 남해야말로 리아스식 해안의 정수다. 바닷물이 차올라 낮은 지대는 물에 잠기고 산자락만 물 위에 남아 H가 된 것이다. 납산은 그 가운데 길목에 떡하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그래서일까, 남해에서 가장 높은 산은 망운산이건만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은 납산이다.


근래엔 호구산으로 많이 불리지만, 정상에는 여전히 납산이라는 정상비가 남아있다. ‘납’이란 원숭이의 옛말로, 잔나비란 말도 납에서 왔다. 따라서 원(猿)산이라고도 불린다. 호구산, 납산, 원산. 모두 같은 산을 부르는 이름이다. 지맥꾼들에겐 괴음산~송등산~납산 종주가 인기가 좋은데, 여름에는 낫을 챙겨야 할 만큼 수풀이 우거져 있어 호젓한 산행을 원한다면 용문사 계곡을 빙 두른 능선길이 좋다. 백련암 왼쪽을 들머리로, 염불암 뒤편을 날머리로 삼아 원점으로 회귀하면 약 3시간 소요된다.


납산 정상은 사방이 뻥 뚫려있다. 북으로 강진만과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이고, 남으로는 앵강만과 김만중의 유배지 노도가 보인다. 남서로는 응봉산과 설흘산이, 동으로는 금산과 사량도 지리산이 보인다. 봉수대에 기대앉아 두 눈 가득 한려수도의 풍경을 담다 보면 <구운몽> 양소유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다.


하동 금오산 너머 구름 위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해수관음 보리암을 품은 금산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그러나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려도 영 신통치 않던 태조 이성계가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왕이 되자, 은혜를 갚기 위해 보광산에 금산(錦山)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산에 비단을 둘러준 셈이다. 영롱한 이름 덕분인지 금산에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자 일출명소이다.


금산에는 하동 쌍계사의 말사인 보리암이 있다.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해수관음성지이다. 바닷가에 관세음보살이 유행한 이유는 물가에서 중생의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이다. 워낙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듣고 보살펴준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진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상주해수욕장 방면의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약 1시간 반을 오르면 8부 능선의 보리암에 닿는다. 금산 정상, 금산산장 등 보리암 일원은 걸어서 금방인 거리에 있다. 차량을 이용한다면, 복곡탐방지원센터에 주차하고 3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된다. 사람이 적은 평일에는 복곡탐방지원센터와 복곡저수지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


운무가 걷힌 보리암


2% 부족할 때, 응봉산


사실 남해에는 명산이 하나  있다. 유명하진 않더라도 인기 있는 산이다. 응봉산~설흘산 능선이다. 작다고 얕보지 말라. 해남 두륜산에 갔다가 되려 달마능선에 반한 사람이라면 필시  능선을 좋아할 것이다. 능선은  구간으로 나뉜다. 응봉산은 암산이고, 설흘산은 육산이다. 체력과 시간을 감안할  설흘산 구간은 등산성이 떨어지므로 응봉산 구간만 걸어도     셈이다. 선구마을에서 올라 다랭이마을로 내려오는데 3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 인간은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품은  바다를 바라본다. 그것도 모자라 파도가 지나가면 바다로 달려갔다가 파도가 치면 후다닥 도망친다.  순수한 장난은 바다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미국의 저명한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말했다.


내려올  알면서도 산을 오르는 이유도 그와 같지 않을까. 너무도 안전한 도시에서 벗어나 약간위험이 도사리는 야생으로 돌아가려는 본능 같은 . 능선의 칼바위에 앉아 ‘바다멍 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존재가 헷갈린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산이 바다인지, 바다가 산인지.


응봉능선에 설치된 나무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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