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山> 신준범 기자 인터뷰
등산 시장은 '코로나 호황'을 맞았다. 실내 모임이 어려워지자 시민들이 헬스클럽 대신 도시와 가까운 산을 찾으면서 2021년 3월 국립공원 탐방객 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약 20% 상승했다. 등산하는 2030이 늘면서 영원아웃도어·K2 등 매출 상위 4개 아웃도어 브랜드는 지난해 동기 대비 30%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1969년 창간되어 국내 등산문화를 선도해온 월간 <山> 역시 골수 산꾼들만 보던 산 잡지에서 이제는 전 국민이 보는 토탈 아웃도어 매거진으로 변화했다.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은 매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반세기 경험으로 깨달았다. 더불어 '디지털화(digital化)'에 성공했다. 무려 50만 명이 월간 <山> 네이버 기사를 구독한다.
이러한 성장세의 중심에 사람과 산을 잇는 특별한 기자들이 있다.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소수정예인 등산 전문기자는 일반 기자와 어떤 점이 다를까. 기자 지망생이 월간 <山> 신준범 기자에게 물었다.
체력이 중요할까요? 북한산 정도는 오릅니다만.
취재산행을 가면 기자가 대부분의 짐을 짊어져야 해요. 함께 산행하는 젊고 훤칠한 게스트는 대개 본인 장비만 드는 수준의 초보자이기 마련이어서 공용장비를 주지 못해요. 기자는 무거운 장비를 져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평균 이상의 체력을 갖고 있어야 해요. 등산을 생활화해서 등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종종 다른 매체에서 월간 <山>을 희망하는 기자들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분들이 산을 좋아하는 것과 우리 산행 난도는 엄연히 다르거든요. 산에 대한 막연한 호감으로 와도 얼마 버티지 못해요. 아무래도 우리는 산을 좋아하는 어린 기자를 신입으로 뽑고 싶어 하죠. 그래야지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서 산 기자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취재 때문에 백두대간을 2년 탔어요. 진짜 산꾼이 아니라면 2년 동안 백두대간을 타기란 쉽지 않을 거에요. 설령 본인이 체력이 된다 하더라도 산을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산행 내내 투덜대거든요.
취재산행이 힘든가요? 재밌을 것 같은데.
그렇게 간단한 산행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산에서 위험하고 불확실한 순간을 맞닥뜨릴 수가 있어요. 기자가 사실상 산행대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게스트와 사진기자를 이끌고 현장에서 어떤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가 생겨요. 취재의 퀄리티를 더 중요하게 볼 것인지, 일단은 대원들의 안전을 챙길 것인지 판단해야 하죠. 동선과 스케줄까지도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해요. 일행 중에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과중한 책임이 따라요.
인터뷰 잘하는 팁을 알려주세요.
우리는 산 쪽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특징이에요. 다른 분야와 비교해서 산 사람들이 특별히 다르다고 보긴 어렵지만, 산 사람들은 단순하면서 다혈질적이고 처음부터 마음을 열지 않거든요. 자존심 강한 사람들은 인터뷰 자체를 거절하기도 하고 무례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또 산 사람들의 특징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열어요. 또 산 쪽은 좁아요. 좀 안 맞는 사람이라고 해도 날을 세울 게 아니라 관계를 계속해서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어요.
인물기사는 상대방에게 해가 될 것인지 아닌지 특히 조심해야 해요. 누가 다치거나 죽었을 때는 고인이나 유가족에게 피해나 불명예를 줄 수 있는지도 검토를 해야 해요. 깊은 부분은 기사로 다루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경우도 많아요. 기사를 통해 무언가를 들추어내겠다는 욕심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우선이에요. 인터뷰어와 서로 마음을 열어서 ‘내가 이런 식으로 이런 기사를 쓸려고 한다’까지 공유가 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좋은 면과 장점을 얘기해주지만요.
칭찬을 늘여놓다가 오히려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점점 깊어질 수는 있는데 그 사람한테 마음을 다 주면 안 돼요. 그 사람한테 마음이 가버리면, 이만큼만 쓰면 되는데 점점 더 사족이 늘어나요. 안 들어가도 될 말들이. 그러면 독자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아요. 때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계가 깊어질 수 있겠죠. 그런 사람일수록 기사 써주기가 더 힘들어요.
감정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군요.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기사는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더 중요해요. 많이 빼야 돼요. 사람들은 매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수많은 매체와 활자를 공들여 읽지 않거든요. ‘굉장히 멋지고 아름다운 산세를 가진….’ 이런 말은 아무도 믿지 않아요. ‘산 빛깔이 세 가지다. 그 세 가지는….’ 이런 식으로 사실로써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해야지, 기자가 느끼는 주관과 감정, 수식을 사람들은 싫어해요.
잡지 특성상 탐방기사가 많은데도 감정을 배제하고 글을 쓰는 건가요?
아니요. 감정이 들어가야죠. 감정이 들어가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요. 더군다나 우리는 자연을 다루는 매체라서 감성적인 부분들이 충분히 곁들여져야 해요. ‘갑자기 경치가 뻥 터지더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런 게 들어가야 하는데, ‘그 문장’이 중요한 거예요. 팩트와 감정이 재료와 양념처럼 잘 버무려져야 돼요. 팩트만 나열한 기사는 가치가 없는 기사예요. 그런데 요즘 기자들은 대부분 생재료 자체를 독자들한테 먹으라고 해요. 팩트는 재료예요. 본인이 요리사가 되어야 해요. 내가 그 재료들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 해요.
그런데 엉뚱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로 해야 해요.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아름답지 않아요. 그러니까 독자들한테 왜 그게 아름다운지 아름답다는 단어를 쓰지 않고 전달해 주어야 사람들이 납득을 할 수 있어요.
글이 안 써질 때는요?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어요. 기자는 활자가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독서를 놓아버리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어요. 총을 쏘려면 실탄이 있어야 하듯 기자에겐 독서량이 있어야 해요. 그것도 좋은 책들을 꾸준히 읽어야 해요. 그리고 나한테 자극이나 감흥을 주었던 구절은 포스트잇을 붙여서 책상 앞에 놔두고 글이 막힐 때 그걸 꺼내서 읽어요. 막힌 글은 글로써 풀어야 해요. 좋은 글로써.
등산 전문기자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산에 대한 마음입니다. 산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정성이 중요해요. 등산 기술이나, 체력, 글 실력은 그 다음이에요. 우리 직업은 한겨울에 동계산행 가서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서너 시간짜리 산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도 해야 할 것들이 많고. 산에 다녀와서도 글을 써야 하고.
칼 같이 워라밸을 추구하면 이 일은 어려울 거예요. 이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일할 마인드가 있는지가 중요해요. 자기 이름을 건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야근이나 주말에 나와서까지도 취재를 할 수 있어야 돼요. 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이 이 모든 것을 소화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