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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피셜 지오그래픽 Jul 21. 2021

여자, 혼자, 종주

「하얀 능선에 서면」과 「와일드」


Trailblazer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 모델명으로 귀에 익다. 아무도 가지 않아 수풀이 우거진 길을 불을 질러 헤쳐나간 선구자를 뜻한다. 다음 사람은  길을 따라만 가면 되니 편하다. 비단 어느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독 최초에 집착하는 산악계에서는 그런 선구자를 높이 평가한다.


생활고에 시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본인의 등산 목적을 이해시키기란 몹시 힘든 80년대 초반에 태백산맥을 종주한 남난희. 마약과 낙태와 이혼의 구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90년대 중반 PCT를 종주한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 이들에겐 '여자, 혼자, 종주(縱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둘 다 만 26세였다는 사실은 시공간만 다를 뿐 같은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는 평행이론을 생각나게 한다.



백두대간과 PCT


「하얀 능선에 서면」은 1984년 겨울 76일간에 걸쳐 부산 금정산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태백산맥을 단독으로 종주한 유명 산악인 남난희씨의 체험기다. 그 무렵 새로 창립한 국토순례회에서 국토의 얼과 맥을 찾겠다는 취지 아래 겨울 태백산맥을 단독으로 종주할 여성을 물색하던 중 그녀가 낙점된 것이다. 이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조선 후기 지리학자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가 1987년 발견되고, 산악잡지 『사람과 산』이 백두대간 복원 운동이 일으키면서 그녀가 걸었던 길이 백두대간의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그녀가 걸은 구간은 완전한 백두대간 코스는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상징을 띠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1990년 지리산부터 진부령까지 백두대간을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종주한다.


「와일드」의 배경인 PCT(Pacific Crest Trail)는 캘리포니아주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태평양 연안의 산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4,285km 장거리 도보여행길이다.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캐스케이드 산맥 등 4천 미터를 넘나드는 산맥을 타야 한다.


PCT는 1930년대 등장한 개념이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산악인 존 뮤어와 시에라 클럽의 정신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존 뮤어 트레일’ 등 태평양 연안에 산재한 유명 트레일을 연결·통합한 것이다. 수많은 클럽과 자원봉사자들의 의기투합 끝에 PCT는 AT(Applachian Trail)과 함께 1968년 미국 국립 탐방로로 승인받고 1993년 완성되었다. 이후 PCT는 일종의 장거리 도보여행의 대명사격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많은 이들이 PCT 종주를 한다. 셰릴 스트레이드라는 여성이 자신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고자 PCT를 걷는 것이 「와일드」의 주된 내용이다.


남난희(1957~)과 셰릴 스트레이드(1968~)


그녀들이 생고생한 이유


허리까지 빠지는 폭설을 뚫는 남난희와 이글거리는 사막을 건너는 셰릴 스트레이드가 공통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사람들은 왜 걸으려 하는 걸까? 평소에 그냥 걷는 것과 이러한 장거리 종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도 하필이면 왜 산능선을 따라 걷는 걸까? 저자가 고백했듯 허울 좋은 명분에 편승해보려는 허영심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8천 미터 고봉 안나푸르나와 마칼루를 초등하고 샤모니에서 가이드로 활약한 프랑스 등반가 리오넬 테레이(Lionel Terray, 1921~1965)는 산을 오르는 행위, 즉 등산을 자신의 저서에서 ‘무상(無償)의 행위’라고 말했다. 즉 등산이란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보상 없는 행위이기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종교적 차원까지 끌어올린 일류 알피니스트의 심오한 등산관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의 말마따나 온전히 아무런 보상도 없는 행위란 인간의 실존 조건에 비추어볼 때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안중국 前 『월간 山』 편집장은 심지어 자신이 취재한 대부분의 산악인이 명예욕의 화신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는 점에서 등산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육체적 고통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아를 성찰한다. 지독한 외로움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여행을 하고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눈앞의 육체적 고통과 마주하다 보면 감정적 상처 따위는 잊히기 마련이다.


셰릴의 복잡한 삶이 여행의 끝에 이르러 그토록 단순해진 사실이 그 증거다. 히피를 자처하며 냉소적으로 살아가던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멀고 힘든 길을 떠나야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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