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크라카우어, 「희박한 공기 속으로」
따분한 일상을 보내다 문득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 Into Thin Air」는 미국 아웃도어 전문 매거진 <아웃사이드Outside>의 기자 존 크라카우어(Jon Krakauer)가 1996년 당시 날로 상업화되어 가는 에베레스트 등반과 그에 따른 논란을 취재하러 갔다가 겪은 끔찍한 사고를 재구성한 논픽션이다. 저자는 본인이 겪은 실화를 토대로 상업등반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져 출간 즉시 세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냐는 기자의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s there)"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긴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와 1953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이래 에베레스트는 엘리트 산악인의 전문 영역이었다. 그러나 1992년 뉴질랜드인 로브 홀(Rob Hall)이 돈을 받는 대가로 고객을 정상까지 올려다 주는 ‘어드벤처 컨설턴츠(모험 상담자)’를 설립함으로써 상업등반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라이벌인 스콧 피셔(Scott Fischer) 역시 ‘마운틴 매드니스(산에 미친 놈)’를 설립하는 등 해발 5,3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군사 기지를 방불케 하는 상업등반대의 텐트촌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첫 번째 상업등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고국 뉴질랜드를 방문한 홀에게 돌아온 것은 뜻밖에도 박수갈채가 아닌 손가락질이었다. 에드먼드 힐러리(에드먼드 힐러리 역시 뉴질랜드인이며, 뉴질랜드 지폐에 얼굴이 실릴 정도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다.)로부터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은 것에 홀은 무척이나 당황하고 상심했다. 힐러리는 영리 목적의 등반을 아니꼽게 보며 홀의 업적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1985년 등산 경험이 얼마 없는 딕 배스(Dick Bass)라는 부자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에베레스트에 오른 뒤 온갖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산악인들은 그때 딕 배스를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싸구려 산으로 전락시킨 인물이라며 경멸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정하는 것을 뜻하는 ‘세븐 서미츠(Seven Summits)’를 대중화시키기에 이른다.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딕 배스 같은 사람을 산악인(mountain climber)이 아니라 사회적인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social climber)으로 간주했다.
네팔 정부는 몰려드는 인파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환경을 보존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입산 인원을 제한하기로 했다. 대신, 자국의 빈약한 재정에 보태려는 속셈으로 허가증의 요금을 올렸다. 91년부터 점진적으로 요금을 인상한 끝에 96년 기준 한 사람당 70,000달러(한화 약 8,000만원)라는 엄청난 요금을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사람의 숫자는 1996년 약 100명에서 2019년 약 900명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왔다. 이는 곧 세계 최고봉이 돈 많은 부자들에게 오락거리로 팔리고 있음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크라카우어는 기자로서의 기지를 십분 발휘하여 한 편의 소설 같은 논픽션을 완성시켰다. 이는 저널리즘과 소설의 작법을 최초로 동시에 적용하여 세간의 호평을 받은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In Cold Blood」와 견줄만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독하리만큼 집요한 관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현장 묘사는 독자를 가짜 같은 진짜의 세계로 흡입력 있게 빨아들인다.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로브 홀이 이끄는 ‘어드벤처 컨설턴츠’ 팀과 스콧 피셔가 이끄는 ‘마운틴 매드니스’ 팀 등 도합 18명이 조난 당하고, 그중에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참사가 일어난 데에는 홀과 피셔의 경쟁심이 작용했다. 상대 팀 고객들이 열심히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자기 고객들을 돌려세우기는 정말 싫었을 테고, 그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을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예컨대 더그 한센(Doug Hansen)이라는 로브 홀의 고객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고작 100m 남겨두고 과거 두 차례나 돌아선 바 있다. 우체국 직원으로 밤낮으로 일하며 평생 등반 비용을 모으고, 성조기 대신 자신의 후원금을 모아준 초등학교의 깃발을 들고 온 그를 이번에도 돌려세우기란 홀의 입장에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후 2시에는 무조건 하산해야 한다는 기존의 철칙을 깨고 홀이 맨 나중에 올라오는 더그 한센을 위해 5시까지 에베레스트 정상에 남아 있던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애초에 자격 미달인 자들이 많았다. 로브 홀의 등반대에 속한 고객 중에 8,000m급 산에 오른 경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평소 일의 중압감과 눌려 살았고 일 년에 한두 번 높은 산을 오를까 말까 한 사람들이 일생에서 가장 원대한 꿈을 이뤄보고자 에베레스트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새 등산화를 꺼내 신는다거나, 자신의 아이젠이 새 등산화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당황하는 동료들은 '아담한 소도시 출신의 소프트볼 선수들에 지나지 않는 주제에 뇌물을 써서 단번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엉터리들의 집합’이나 다름없었다.
크라카우어는 기자라는 본인의 신분을 불편해했다.로브 홀의 등반대에 참여하겠다고 서명했을 때 자기네 일행에 기자 한 사람이 끼어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크라카우어는 '조용히 뒷전에 앉아 자기네의 언행을 말없이 기록해서 대중에게 동료들의 약점이나 결점을 무참히 까발릴 사람'이었다. 동료였던 벡 웨더스(Beck Weathers)는 훗날 ABC 방송의 뉴스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에 기자 한 명이 있다는 건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줬어요. 이 양반이 곧 제 나라로 돌아가 몇백만 명이 읽을 이야기를 쓰겠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괜히 그 등반대에 낀 죄로 그 사람 글에 올라 놀림감이 된다면 고약한 일 아니겠습니까? 가이드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럴 수 있죠. 그 사람들은 어떤 잡지에 실릴 기사에 자기네 얘기가 나와 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고객들을 산 정상에 올려놓고 싶어 할 거거든요. 가이드가 신문 잡지에 떠들썩한 기사가 나게끔 우리를 한바탕 몰아붙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크라카우어는 그 참사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냉철하고 정직하게 기록하는 바람에 훗날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에베레스트에 같이 올랐던 아나톨리 부크레프(Anatoli Boukreev)는 「The Climb : Tragic Ambitions on Everest」를 집필하여 크라카우어의 일방적 서술에 반박의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크라카우어가 특히 괴로워한 건, 에베레스트에서 죽은 동료들의 유족으로부터 오는 비난이었다.
“당신이 쓴 글에 비추어볼 때 당신은 그 산을 오른 모든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흐르고 있는지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 같더군요. 당신은 무사히 살아 돌아와 집에서 잘 지내면서 남들의 판단을 심판하고 그들의 의도와 행위, 개성과 동기들을 분석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 리더들과 셰르파들, 고객들이 어떻게 했어야 옳았는지 점잖게 논평하고 있어요. 오만한 자세로 그들의 잘못을 비난하고 있고. 하지만 자기 말로, 존 크라카우어 당신은 파멸의 조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감지했을 때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 텐트로 기어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내가 읽고 있는 건 이미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아예요. 당신의 분석과 비평, 판단, 가설의 그 어느 것도 당신이 찾고 있는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할 거예요. 거기에는 어떤 해답도 없어요.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무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모두 다 주어진 시간, 주어진 정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의도는 없었어요. 그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지 않았고.”
크라카우어는 자신조차 한동안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당사자 대다수와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하고 무선교신 일지의 정확한 전후 사정을 분석했다. 그리고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재미난 글솜씨가 그 집요한 취재의 결과에 화룡점정을 찍어 대중성 또한 확보했다. 그는 이 책을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사망한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Everest 96 Memorial Fund’에 기부함으로써 끔찍한 악몽에서 홀로 살아남은 본인의 죄책감을 씻어내려 했다.
단조롭고 따분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험에 찬 근사한 삶을 꿈꾸기만 하는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을 영어권에선 ‘월터 미티(Walter Mitty)’라고 부른다. 꿈을 크게 갖는 것은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꿈과 몽상의 경계가 흐려지면 자칫 목숨마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대참사가 일어난 1996년 봄의 에베레스트 산비탈에 적지 않은 몽상가들이 모여 있었듯 말이다. 그 산에 오르겠다고 온 사람들 중에는 괴짜, 밀리어네어, 소셜 클라이머가 가득했다.
100년 전에도 월터 미티는 있었다. 1934년 모리스 윌슨(Maurice Wilson)이라는 영국의 퇴역 군인은 직접 경비행기를 몰고 티벳까지 날아가, 승려로 위장해 국경을 통과하고, 다른 원정대가 숨겨놓고 간 식량을 훔쳐먹으며 에베레스트 7,000m 지점까지 올랐다. 노력은 가상했다만, 그는 결국 눈밭에 얼어붙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자연은 우리의 의지대로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닌 것이다. 최근 들어 현대판 윌슨이 급증하는 현상은 개인의 무책임한 행동에 따른 구조 인력 낭비라는 또 하나의 이유로 곱지 않은 눈총을 받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의 꿈을 지녔지만 클럽에 소속되지 않은 홀몸의 월터 미티들이 찾게 되는 곳은 결국 상업등반대이다. 그러나 8천 미터 고지에서는 가이드도 때로는 무력한 상태에 빠져 고객의 목숨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두 팀의 베테랑 가이드, 로브 홀과 스콧 피셔라고 그날 죽음을 피할 순 없었듯 말이다. 이러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자 독일산악가이드협회는 무려 3년간 훈련을 받고 3주간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가이드 자격을 부여하는 등 국제산악가이드협회(IFMGA)는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개인의 판단이다. 등반은 태생부터가 위험한 곳에서 안전을 찾으려 하는 모순된 행위이며, 누가 에베레스트에 오를 만하고 누가 그렇지 못한가를 규정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가이드가 딸린 등반대에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이 그 산을 오르기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업등반대 또한 보수적인 산악인들이 말하는 '등산의 순수성'을 꼭 헤친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올바른 윤리관이 장착된다는 전제하에 상업등반은 현대 등반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브 홀 등반대와 스콧 피셔 등반대의 조난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으며 그 참사를 면밀하게 기록한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크라카우어는 이 책으로 1998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라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미국 문학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2015년 영화 「에베레스트」로 각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