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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의 싸움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어쩌면 생각의 소음을 잠재우는 유일한 길은,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

by PureunDal Archive

"우리가 저항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지게 된다."


-Carl Gustav Jung-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깊은 휴식을 갈망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가장 소란스러운 장소가 됩니다. ‘이제 그만 쉬어야지’라는 생각,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걱정.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불안의 불씨가 되어 우리를 잠식합니다.


우리는 왜 쉬려고 할수록 더 쉬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여기, 생각을 다루는 우리의 서툰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유명한 심리 실험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단 한 가지, ‘흰 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를 주었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온통 흰 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생각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 생각을 끊임없이 소환하는 역설적인 상황. 우리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서 이 ‘흰 곰 실험’을 스스로 반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다른 길로 안내할 손님’으로 여겨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뇌의 스위치를 끄려는 헛된 시도 대신, 그 넘쳐나는 에너지가 흐를 새로운 물길을 터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비움’에 이르기 위해 ‘채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순간을 떠올려 봅시다. 톡, 토독, 후두둑… 각기 다른 리듬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 그 소리의 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동안, 우리는 복잡한 미래 계획을 하지도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오직 ‘빗소리’라는 순수한 감각으로 가득 채워져, 다른 생각의 파편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습니다.


진정한 고요함은 생각을 몰아낸 텅 빈 진공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충만한 감각으로 의식이 가득 차, 다른 소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애써 무언가를 잊으려 노력하는 대신,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을 처음 듣는 곡처럼 온전히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멜로디의 흐름, 악기의 소리, 가수의 숨결 하나하나에 당신의 모든 주의를 선물해 보세요.


진정한 고요함은 생각과의 싸움이 끝난 폐허가 아닌, 아름다운 감각으로 가득 찬 정원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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