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웃의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거의 모두가 인상은 푸근하고 성품은 인자하셨다.
노년의 애상이나 우울 같은 어두운 기색 전혀 없이
욕심도 내려놓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우리 문단의 거장인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 선생.
두 분 다 모질고 모진 젊은 시절을 보내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늙음에 초연했다.
나이 듦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들 욕망에서 자유로운 달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가 당시 그분들 나이가 되니
달관은커녕 여전히 더 가지고 싶고 더 하고 싶은 것들로 늘 욕구 불만 상태다.
노년에는 삶의 모드를 달관의 자세로 바꿔야 한다고 쉽게 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온갖 욕심과 번뇌, 근심과 걱정, 후회와 회한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늙어간다는 것은 돈이든 건강이든
모든 것이 결핍되어간다는 것이요,
또 한편으론 더 편안해지고
더 홀가분해지는 것일진대
나는 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이 듦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 고 박완서 선생의 글 중에서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고 박경리 선생의 유고 시집
나이 육십을 넘어 췌장암 말기라는 절망적인 고비를 겪은
나태주(1945~) 시인 역시 나이 듦을 찬미했다.
"늙은 사람이 된 것은 저절로, 거저 된 일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을 살았고 또 견뎠기에
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 나는 내가 늙은 사람이 된 것을
불평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고 원하는 나의 삶은
지금 이대로 사는 삶이다.
더 많은 것을 원하지도 꿈꾸지도 않는다.
아무런 일도 없는 그날이 그날인
무사안일 그것이다.
늙어서 좋다. 늙은 사람인 것이 다행이다."
- 나태주, <부디 아프지 마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