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만나는 가을

by 길벗


친구가 시를 보내왔다.

좀체 이런 짓을 안 하던 녀석인데

저도 이 시를 보곤 가슴이 시렸던 모양이다.



오늘 아침 가을바람에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차창 바람 서늘해

가을인가 했더니

그리움이더라


그리움 이 녀석

와락 안았더니

눈물이더라


세월 안고

그리움의 눈물 흘렸더니

아~ 빛나던 사랑이더라

작자 미상


- 세월. 그리움. 눈물. 빛나던 사랑.

신파조 분위기를 자아내는 단어들이

가을맞이를 위한 선행학습이라도 되는 듯

가슴을 서늘하게 훑는다.

'뒤끝' 있는 여름의 뒤끝.

가을을 詩로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학창 시절 나름 낭만적인 친구들은

노오란 은행잎이나 빠알간 단풍잎을 주워 책갈피로 활용하고

남은 건 앨범에 보관하기도 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 옛사람들은

꽃씨를 지인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는데

요즘 세상 누군가가 그랬다면

이 양반 유치 찬란이니, 되게 할 일 없구먼,

면박만 받게 되지 않을까.


나도 친구에게 시 한 편을 보냈다.


가을

- 최승자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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