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을 시켰다.
시커먼 춘장을 입고 소담하게 들어앉은
하얀 면발을 보니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침이 고인다.
면발이 짧게 끊기면서 식도로 내려가는 게
못내 아쉽지만 끊임없이 아밀라아제가 분비되니
젓가락을 재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짜장면을 먹으면 추억도 함께 분비된다.
짜장면은 어린 시절 로망이었다.
당시 시골에서 한 뼘 정도 열린 미닫이문이나
여름날 치렁치렁 쳐 놓은 대발 사이로
퍼져 나오던 그 황홀한 내음,
희망고문과도 같은 그 내음 때문에
하릴없이 중국집 앞에서 서성대기도 했었고,
그 희한한 짜장면 냄새를 풍기는 철가방 뒤를
마치 꽃 향을 좇는 벌 나비인 양 뒤따라가기도 했다.
어서 커서 돈 벌어 짜장면을 맘껏 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도 참 많이 했다.
아니, 여간 돈 벌어선 양껏
사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이제 언제 어디서든 짜장면을 먹을 수 있으니
꿈은 이뤄진 거다.
그런데 막상 꿈이 현실이 되니
입맛이 변했는지 짜장면이 변했는지
그때 그 꿈속의 맛이 아닌 듯도 해
조금은 허탈하다.
신세계 같은 파스타, 쌀국수가 나오기 전
짜장면은 한 끼의 식사 외에도
심정의 허기까지 달래주는 묘약 같은 것이었다.
직장 다닐 때는 짜장면을 먹기 위해
일부러 혼밥까지 할 정도였다.
나 홀로 아무 중국집에 불쑥 들어가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키고
홀 한구석에 숨은 듯
계면쩍게 앉아 있다가
누구를 찾는 듯 기다리는 듯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채 섞이지도 않은 면 한두 가락
급히 후루룩 들이켜고,
다시 사주경계하듯
홀 안을 두루두루 살펴본 뒤
낭비 하나 없는 동작으로 설거지하듯
건더기 하나 남김없이 쓱싹 비웠다.
그때의 짜장면 한 그릇이
얼마나 위로가 되어주었던가!
짜장면만큼 달달하고 아련한
추억을 지닌 음식이 또 있을까.
60~70년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 축하 단골 음식이었고
대학 가서도 배갈에 짜장면을 먹으면서
짜장면처럼 내 인생도 달달하게
펼쳐질 것이라 여겼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축하받고 위로받던 시절,
그 시절이 그립고 그 시절 먹던 짜장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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