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최고의 명장면

by 길벗


한 해를 회상하며 스마트폰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몇몇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3월 연휴 때 부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내 형제들과 조카들과 함께한 시간을 담은 사진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93세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손녀인 37세 조카가 함께 권커니 잣거니 연신 소주잔을 맞대는 장면이었다. 그때 그 순간을 되돌려 봤다. 어머니는 그 순간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소주 서너 잔은 족히 드신 듯싶은데 전혀 취해 보이지 않았다. 지켜보는 우리도 흐뭇하고 뿌듯했다, 올해 최고의 시공간이었다.



이날 어머니의 자식들인 60~70대의 노장파와 어머니의 손주들인 30대의 소장파로 자리가 나누어졌다. 손주들이 아주 살갑게 사랑스럽게 어머니를 대하니 어머니는 우리 자리로 오셔서 아주 적절한 사회성(?) 있는 발언을 하셨다. 윗물이 맑으니 아랫물이 맑다고. 그러니까 부모들이 잘하니 자식들도 잘한다는 뜻이었다. 나를 비롯 어머니의 자식들은 조금은 찔리는 듯했다. 내가 말씀드렸다. 밑불이 사니 윗불이 산다고. 우리도 어머니를 잘 모시겠다고.



노장파와 소장파 간 술잔과 대화가 오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노라니 뭉치면 산다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옛날처럼 한 집에 대가족이 모여 살던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부모, 삼촌, 고모, 형제들... 없이 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할 줄 알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그리 살가울 수가 없었다. 일가친척들도 가까이에 살아 왕래가 잦았었다. 그때 그 시절엔 오늘날처럼 주거, 비혼, 출산, 육아, 사교육, 노후 돌봄 같은 문제가 있었을까? 고독사란 말이 있었을까? 요양원 같은 시설이 있었을까? 어른들은 아이를 돌보고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돌보는 게 당연했다. 그때처럼 다시 뭉칠 수는 없을까? 부질없는 자문자답을 몇 번이나 해보기도 했다.



치매로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어머니는 늘 사람이 그립다는 말씀을 하신다. 밥때가 되면 문 쪽을 바라보며 누구 올 사람이 있는데 안 온 것처럼 허전하고 기다려진다고도 하신다. 어머니는 모두가 모여 살던 옛날이 그리운 것이다. 어머니는 친정으론 8남매의 장녀, 시댁으론 8남매의 맏며느리이시다. 어머니의 고향인 함양과 시집와서 살게 된 거창에서 많은 식구들과 북적대며 살았고 일가친척, 이웃 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외로움이란 단어조차 모르며 지냈는데 이제 혼자가 되어 보니 외로운 게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하신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어머니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올 한 해 최고의 명장면임에 틀림없다. 다시 자문자답해 본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명장면은 얼마나 될까? 인생은 그대로인데 수명만 늘어나는 현실에서 우리의 여생(餘生)이 아름다운 여생(麗生)이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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