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by 길벗


제야의 종소리가 곧 들려올 연말이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본다. 우선 무얼 했는지 알아야 할 텐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올 1월에 눈 구경은 했는지, 2월이나 3월쯤에 복수초는 알현했는지, 어머니 생신 때 부산에 갔다 왔는지, 최근 일주일간 무슨 일을 했는지, 어제 점심은 무얼 먹었는지...... 하루하루가 건망증처럼 깜박깜박 지나쳐갔다.



떨어지는 기억력 탓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생각나는 게 없다는 건 무난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특별한 일 없이. 웬만큼 살아보니 아무 일도 없는 삶이 축복이란 걸 알게 됐다. 보통의 삶이, 지극한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삶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도 축복이었고 특별했던 것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세월이 빠르다, 덧없다며 국민 한탄사(?)를 거듭한다. 한 해 동안 두드러지게 한 일은 없고 부질없이 세월만 또 헛되이 보냈다. 참으로 돈 안 되는 영양가 없는 삶을 산 것이다. 그래도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었던 청춘 시절을 회고해 보면 별 노력도 없이 이만큼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차곡차곡 쌓인 세월이 가르쳐 준 건지 이제 체념도 빨라 새해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 그저 평안한 한 해가 되길 바라지만 이 나이에 이 정도의 희망도 욕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정도면 삶의 고수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고수는 수를 드러내지 않는 법,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의미를 두지 말자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차분하게 여여하게 새해를 맞이한다.


SE-b8e47690-0cbd-4fca-89e9-779edfe4d6be.jpg?type=w1 팔당 소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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