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왕삼매론

by 길벗


보왕삼매론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수행하는 데 마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지를 바라지 마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기 쉽나니

어려움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순결함으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남이 내 뜻대로 되고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 지나니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님을 삼으라


덕을 베풀면서 과보를 바라지 마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돼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억울함을 당하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되나니

억울함을 당한 것으로써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 보왕삼매론을 처음 접한 건 아주 오래전 어느 산사로 가는 오솔길에서다. 사하촌의 기념품 가게에 걸려있을 법한 목각 형태였는데 누군가가 사진에 담는 모습을 보고 이게 뭔가 싶었다. 나도 찬찬히 음미해봤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라는 첫 구절부터 마음에 확 들어왔다. 건강하기를 바라지만 웬만큼 살아 보니 그건 누구를 막론하고 불가능한 일 아닌가.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이 대목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새벽 산사의 샘물처럼 뇌리를 일깨우며 아, 이래서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 구나 싶었다. 아무리 무소유를 주장하는 절집이지만 이 구절만큼은 꼭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보왕삼매론은 중국 명나라 때 묘협이라는 스님이 불자들을 상대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에 대해 쓴 글이다. 불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한다. 참고 견뎌야 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상은 고통과 괴로움 가득한 게 삶이 아니던가. 고통을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만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불자도 아니고 불교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소개하는 게 격에 맞지 않지만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사바세계를 살아내야 하는 모든 이들의 좌우명 같은 금언이라 생각돼 용기를 냈다. 난해한 법문도 아니니 종교를 떠나 가끔은 보왕삼매론을 되뇌며 현재의 삶을 살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전남 순천시 승주읍 송광사 우화각(2012.5월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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