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과 정순왕후는 왜 합장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by 길벗


영화『왕과 사는 남자』의 열풍을 보면 오래전부터 가졌던 의문이 다시 머릿속을 맴돈다. 왜 단종과 정순왕후는 여느 왕릉처럼 부부 합장릉이 아니라 서로 멀리 떨어져 각각 따로 묻혀 있을까. 단종을 모신 영월의 장릉과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남양주의 사릉. 왕과 왕비를 모신 능은 모두 경건하게 다가오지만, 이 두 곳만큼은 애틋함과 애잔함이 더 앞선다. 우리 역사상 가장 슬픈 운명을 지닌 왕과 왕비의 사연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단종의 삶은 널리 알려져 있다. 12살(1452년)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왕위에 올랐으나, 15세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겼고, 17세 때 사육신의 단종 복위 사건 여파로 영월로 유배되었고, 불과 넉 달 뒤 그곳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그렇다면 정순왕후는 어떠했는가? 그녀는 15세(1454년, 단종 2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457년 단종이 유배길에 오르며 궁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영영 이별하게 된다. 정순왕후는 82세(1521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많은 세월을 홀로 견뎠다. 궁녀들의 도움과 주변의 보살핌에 의지하며 어렵게 삶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양반 가문의 귀한 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참혹한 풍파를 겪었고, 국모나 지어미로서의 삶을 온전히 펼치지 못한 채 자식 하나 없이 긴 세월을 인내해야 했다.



저승길 또한 순탄치 않았다. 장례를 치러 줄 사람도, 마땅한 묫자리도 없던 처지에서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시댁(해주 정씨) 집안의 선산에 묻혀야 했다. 사후 177년이 흐른 1698년(숙종 28년), 단종이 복위되면서 그녀 역시 왕후로 추존되었고 무덤은 '사릉(思陵)'이라는 능호를 받게 된다. 사릉은 영월을 바라보며 열일곱 살에 헤어진 단종을 그리워한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살아서 함께한 세월은 겨우 3년, 죽어서도 두 사람은 570년 가까이 서로 떨어져 있는 셈이다.



어느 해 나는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를 찾았다. 그곳에는 단종의 피맺힌 한과 사무치는 그리움이 서려 있는 몇몇 상징물이 있다. 유배 당시 단종의 모습을 보았고(觀),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600년 수령의 '관음송', 그리고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그리며 단종이 직접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이 그것이다. 그곳에서 마주친 시조 한 수가 가슴을 쳤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을 유배지에 두고 돌아가는 길에 읊었다는 글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청령포를 둘러보니 강과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배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천혜의 유배지였다. 한편으로는 부드럽게 물돌이치는 서강과 낙락장송이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요즘 같으면 잠시 고립되어도 좋을 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거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왕과 왕비인데, 이제 두 분 모두 복권이 되었음에도 왜 합장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만약 함께 묻힐 수 있다면, 이곳 청령포가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록을 살펴보니 단종이 복위된 숙종 대에 합장을 논의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미 영월의 장릉과 남양주의 사릉이 각각 왕릉의 격식을 갖추어 자리 잡은 뒤였다. 합장을 위한 이장은 풍수지리적 부담과 왕실 의례의 복잡함, 정치적 논란 등 현실적인 장벽이 컸을 것이다. 결국 두 무덤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두 사람은 조선 왕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왕과 왕비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역사를 두고 흔히 후대의 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역사적 · 제도적 사정 때문인지 몰라도, 조선 정치사의 비극이 물리적 거리로 남아 5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단종과 정순왕후, 그들은 언제쯤 긴 그리움을 끝내고 한곳에 잠들 수 있을까.


영월 청령포(2017년 8월)
영월 장릉(2017년 8월)
남양주 사릉(2019년 6월)
사릉 옆 전통수목 양묘장의 금낭화(2019년 6월)


꽃으로 살지 못한 비운의 여인, 그 여인의 한이 철마다 꽃으로 피어나는가!

사릉 내에는 '전통수목 양묘장'이란 아주 특별한 곳이 있다.

우리 고유의 우량 식물의 씨를 받아 종자와 묘목을 생산하여

궁 · 능 · 원 등에 분양하고 있는 곳으로, 토종 식물자원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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