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 <얼굴 난초>

by 길벗

"선생님,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요"라고 누군가가 물었다. "길을 가다가 가끔 보이는, 리어카나 포장마차에 '군고구마 팝니다', '붕어빵 팝니다' 하고 써 놓은 글 있잖아요. 정말로 살아 있고 절실한 글이지요. 그런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입니다." "만약 이 그림을 그리면 얼마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오면 그날로 나는 붓을 꺾을 것이다."라고 일갈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세상이 병들고 시대가 병들었으니 사람이 병드는 것도 당연하다."라며 병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강연과 서화에 몰두하였다.


장일순(1928~1994).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원주에 대성학교를 세운 교육자요, 서화가요, 신용협동조합 운동과 한살림 운동을 펼친 사회운동가다. 1970년대 원주를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본거지로 만든 지도자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한 공생과 살림의 문명을 주창한 생명사상가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유학 · 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고, 특히 혜월 최시형의 사상과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일명 '걷는 동학'으로 불리기도 하는 등 종교 간의 장벽을 넘어 대화를 추구한 선지자이기도 하다. 이현주 목사는 선생을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며 존경을 뜻을 표현하기도 했다.


선생의 호는 청강(靑江), 그리고 무위자연의 삶을 지향하는 무위당(无爲堂)과 좁쌀 한 알이라는 뜻의 일속자(一粟子)다. 그는 생전에 난 치는 것을 좋아했다. 김지하도 그의 문하였다. 옛사람들은 난을 '그린다'는 말 대신 난을 '친다'라고 했다. 그린다는 관점에서 볼 때는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고 친다고 본다면 난에 담긴 뜻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그의 난화는 사람 얼굴을 닮아 얼굴 난초 그림이라고 불린다. 용묵란(容墨蘭)이다.


선생의 몇몇 작품을 감상해 본다. 이전에 해설 삼아 판화가 이철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일순 선생은 평생 붓글씨를 쓰셨다. 굳세고 힘 있는 예서체는 한자와 한글에서 두루 일가를 이루셨다. 사군자 중에서는 묵란을 즐겨 치셨고, 또 거기서 각별한 경지를 보이셨다. 민초를 그린 듯도 하고 보살의 얼굴을 그린 듯도 한 선생의 '무위란(無爲蘭)'은 난초이기도 하고 흔한 잡풀이기도 한 풀포기 위에, 꽃대를 치고 꽃잎을 그린 붓 자국이 마치 사람의 조용한 얼굴이다. 반가사유상의 그윽한 표정과 비견할 만하다. 고요도 있고 웃음도 있고 초탈과 깊은 사유가 있는 그 표정은,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는 큰 진리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은 "선생의 독자적인 얼굴 난초는 그가 문인 화가로서 이 시대 미술에서뿐만 아니라 문인화의 오랜 역사적 전통의 맥락에서 언급될 만한 징표로 여겨진다. 그것은 결코 기법의 수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맑은 인품과 꿋꿋한 삶 속에서 터득된 하나의 결실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그가 창조적 문인화의 세계를 보여 준 마지막 문인 화가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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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의 난화와 글씨에 대한 많은 일화가 전해온다. 어느 날 지인이 장일순에게 "선생님,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요"라고 물었다. "길을 가다가 가끔 보이는, 리어카나 포장마차에 '군고구마 팝니다', '붕어빵 팝니다' 하고 써 놓은 글 있잖아요. 정말로 살아 있고 절실한 글이지요. 그런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입니다."



1991년 어느 겨울날, 이 무렵 무위당 선생은 큰 병을 얻게 된다.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세상이 병들고 시대가 병들었으니 사람이 병드는 것도 당연하다.'라며 병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강연과 서화에 몰두하였다.


참고 서적 : 김익록 엮음,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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