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마상청앵도>

by 길벗


옛 그림을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어 심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하나같이 음미해 볼 만한 뜻을 지니고 있다.


옛 그림에는 시나 짤막한

글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찬문(撰文)이나 시문(詩文),

또는 화제(畵題)라고도 한다.

시를 그린 그림이거나 그림에 맞는 시다.

일찍이 소식(蘇軾)이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라고 일컬었듯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 종이에 수묵담채, 117x52.2cm, 간송미술관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마상청앵도다.

마상청앵(馬上聽鶯).

말을 타고 꾀꼬리(꾀꼬리 앵鶯)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선비의 나들이를 묘사한 것 같은데

화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나무가 궁금하다.

제화시(題畵詩)에 나오는

"楊柳"로 볼 때 버드나무가 분명하다.

버드나무는 주로 물가에 심는데

봄의 전령사로 알려졌다.

예로부터 버드나무에 얽힌 주제는

사랑과 이별 아니었던가.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재회의 언약을 주고받고 했던 것.

그렇다면 배경은 봄날의

어느 물가 나루터일 터다.

선비는 한 쌍의 새소리를 들으며

떠난 님을 떠올리며 시름에 젖는다.

꽃 피는 봄이 왔는데 떠난 님은···.

선비의 표정이 그렇게 보인다.

너무 통속적인가.

대개 이런 유는 남정네보다

아낙네가 등장하는 게

보편적이긴 하지만

남녀 간의 정한(情恨)이나 이별의 아픔이

어디 여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가.


<마생청앵도> 역시 화폭에 시가 쓰여 있다.

김홍도의 친구인 이인문이 지은 것이다.

한자 실력도 부족한데다

빈약한 시적 감수성으로

내 능력으론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

여기저기 답을 뒤적여 봤다.

정민 교수의 책에서 답을 찾았다.

화면 위쪽에 있는 시는 이렇다.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岸

惹烟和雨織春江


정민 교수의 해설로 감상한다.


어여쁜 님 꽃 아래서

갖은소리 연주하듯

시인 술잔 앞에 놓인

노란 감귤 두 개인 양.

수양버들 강 언덕에

*금북이 왕래 터니

안개비를 끌어와

봄 강에 옷감 짜네.

정민,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 북은 베짜는 도구임.


꾀꼬리 울음소리가

마치 어여쁜 아가씨의 피리 소리 같고

한 쌍의 (노란) 꾀꼬리는

황금빛 감귤처럼 곱다.

여기까지는 평이하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은

뒤의 두 구절이다.

"수양버들 강 언덕에

금북이 왕래 터니

안개비를 끌어와

봄 강에 옷감 짜네"


풀어 설명하자면

꾀꼬리가 수양버들 휘늘어진 강변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휙휙 날며 조잘대는 것이

마치 금실 북이 베틀 위를

부산하게 오가는 것에 비유했다.

그렇게 금북이 뻔질나게 오가더니

봄 강물 위에 아련한 비단을 짜놓았는데

이는 자욱한 안개비를 일컫는 표현인 것이다.

자욱한 안개비와 아련한 비단.

그 비유가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정민 교수의 시 해설을 접하니

이인문이 지은 제화시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전통 미술이 지닌

여백의 아름다움을 글로 보는 듯했다.


시가 먼저인지 그림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시를 먼저 떠올리면

김홍도의 그림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우선 꾀꼬리가 두 마리인데

위쪽은 쉬 보이지만

아래쪽, 그러니까 화폭의

오른쪽 끄트머리에 보이는

한 마리는 좀체 찾기 힘들다.

못 찾겠다, 꾀꼬리다.

꾀꼬리의 날갯짓이라도

리얼하게 리드미컬하게

묘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화폭의 상당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둔 건

자욱한 안개비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홍매화 활짝 핀 봉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