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밤

by 길벗


친구들과 1차에서 소주로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맥줏집으로 2차를 갔다. 앉다 보니 홀의 가운데 자리였다. 혹시 단체 손님이라도 오면 비켜줘야 할 텐데, 하며 저쪽 구석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주인은 아직 이른 시간이니 아무 데나 앉으라고 한다. 잠시 후 주인의 예상과는 달리 손님이 들어왔다. 그것도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덟 명. 우리 셋이 옮기지 않으면 저들은 이산가족이 되거나 다른 집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 우리는 알아서 기는 식으로 잽싸게 맥주잔과 먹고 있던 안주를 들고 구석 자리로 피신(?)을 했다. 젊은 일행들은 우리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연발이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한창 술과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 주인이 안주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왔다. 저쪽 단체 손님이 자리를 양보해 줘서 고맙다며 우리 먹으라고 시킨 마른안주였다. 이미 거나해진 술기운에다 허를 찌르는 선의가 더해지니 순간 우리는 왈칵하고 말았다. 다들 반 백 년 주력에 거의 첫 경험이지 싶다. 겨우 그까짓 자리 양보한 거 가지고,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저쪽보다 30~40년은 더 나이 먹은 우리가 가만있을쏘냐, 우리는 치킨을 주문해서 보냈다. 저쪽도 감동 먹은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서로들 눈이 마주치고 짧은 덕담이 오갔다. 안주도 많고 기분까지 업 되니 맥주 500 추가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훈훈한 광경에 술집 주인도 흐뭇함을 감추지 않는다. 소주가 맥주에 녹아들고 맥주가 소주를 품은 맛난 밤이었다.

삼척 추암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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