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불어 법당 앞에 홍매화 피면 내가 온 줄 알아라." 어느 고승의 유언이라는데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큰 스님들의 진영(眞影)이 모셔져 있는 봉은사 영각(影閣) 앞에 핀 홍매화를 보니 유언도 참으로 풍류가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19일 살랑살랑 봄바람을 못 이겨 찾은 봉은사. 일주문 격인 진여문을 지나니 봄꽃만큼이나 화려한 연등이 칙칙한 도심에 화사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봄바람에 등도 그림자도 춤을 추는 듯했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이른 봄꽃을 볼 수 있는 봉은사. 특히 잿빛 도심 속 홍일점인 홍매화 필 무렵의 봉은사는 사월 초파일을 방불케 한다. '봉은사 홍매화'라는 일반명사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탐매객들을 불러 모은다.
3월 말경이면 산수유 매화 진달래 목련이 울긋불긋 자연 단청으로 꽃대궐을 이루며, 할미꽃 돌단풍 수선화 제비꽃 민들레 같은 들꽃들은 삼보일배하듯 객들의 몸을 낮추게 만든다.
'大雄殿'과 위 사진의 '판전(板殿)'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직접 쓴 것이다. 판전은 당시 71세이던 추사가 세상을 뜨기 3일 전에 썼다고 한다. 말미에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果'자는 그가 과천에 머물던 때의 별호에서 따온 것으로, 71세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쓴다'라는 뜻)이라고 낙관하였다. 꾸밈없는 졸박한 글씨에서 추사 말년의 청정무구한 심상을 엿볼 수 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판전이란 경판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봉은사는 신라시대 때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연산군 시절(1498)에 성종의 능인 선릉(봉은사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을 위해 절을 중창하고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한때 선종 제일의 본찰이었다 하니 그 위세가 대단했을 것이다. 당시 강 건너 뚝섬 나루터가 봉은사에 기도를 드리러 가는 아낙들로 대혼잡을 이뤘다고.
종교를 떠나 봉은사의 미덕은 강남 한복판 초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도심 속 자연 쉼터라는 데 있다. 오래된 전각들은 골동품과도 같은 예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스스로 풍경이 되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화려한 단청의 전각들은 종교적 위엄이 넘쳐나는 듯해 신 · 구가 조화로운 모습이다. 1.2km의 봉은사 명상길도 빼놓을 수 없다. 산사(수도산 봉은사)에 걸맞은 고즈넉함이 배어 있는 명상길에는 방문객들의 웃음꽃이 소리 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선계(仙界)와 속계(俗界)가 조화로운 모습이다.
서울 도심에 두 곳의 대형 사찰이 있다. 종로구의 조계사와 강남 삼성동에 자리한 봉은사다. 조계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총본사로 한국 불교의 중심지이나, 성격상 행정적 성격이 다분해 아무래도 절집 특유의 분위기는 떨어진다. 이에 비해 봉은사는 특유의 정취로 사부대중은 물론 일반 시민,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