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봄날, 아내와 함께 양수리의 한 마을에 들른 적이 있다. 아무 연고도 없지만 유년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좋은 한적하고 소박한 농촌이었다. 논과 밭, 과수원을 찬찬히 둘러보던 중 밭일로 분주히 손을 움직이시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사람이 그립고 말동무가 간절하셨던 걸까. 할머니는 호미를 팽개치듯 내려놓고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이야기가 거침없이 이어졌다. 날씨와 동네 땅값부터 자식 자랑, 반려견, 농사일, 전원생활에 이르기까지. 아직 이른 봄이라 내어줄 것이 없다며 미안해하시던 할머니는, 대신 집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잔하자며 손을 이끄셨다. 어딜 가든 탱자나무 가시 같은 까칠한 경계의 눈초리를 의식해야 하는 시절, 낯선 외지인에게 베푸는 의외의 친절과 다정함에 마음이 넉넉해졌다. 대화가 무르익어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는 말을 꺼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올가을 대추와 사과를 딸 때 꼭 다시 놀러 오라며, 신신당부 섞인 인사를 건네며 손 흔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다른 어느 해 초봄의 기억이다. 산 전체가 청정 도량인 예산 덕숭산의 암자들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가 절로 읊조려지는 비구니 스님들의 치열한 구도 정신이 서려 있는 견성암 돌담 아래서, 홀로 포행하시던 비구니 스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스님은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시더니, 돌담 밑에 씨를 뿌렸는데 때 이르게 금낭화가 필락말락 한다며 사진 한 장 찍으라 하신다. 그러고는 내가 방금 다녀온 암자 소개와 함께 그곳을 거쳐 간 고승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김일엽 스님을 비롯해 근대 한국 불교의 맥을 이어온 경허, 만공, 전강 스님의 자취까지.
"다음에 또 들르시게. 봄이 깊어지면 더 아름다운 곳이니." 스님의 작별 인사가 지금껏 기억에 또렷하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처음 산문에 들어섰을 때의 앳된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스님의 법명은 효명, 당시 세수 여든넷이셨다.
양수리 할머니 생각에 어느 가을 다시 그 마을을 찾았다. 비록 할머니를 다시 뵐 수는 없었지만, 마을 풍경은 낯설지 않았고 모든 것이 푸근하게 다가왔다. 산중 암자에서의 기억 또한 불가에서 말하는 '시절 인연'을 깊이 되새기게 한다. 봄날이면 양수리 할머니와 효명 스님이 생각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두 분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면 내 마음도 이내 온화해진다.
다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두 분이 내게 전해준 따뜻한 기운을 생각하면 이미 시절 인연이 꽃피운 것이리라 여긴다. 즉 내가 만나는 인연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가장 선한 나를 만나는 일. 그분들이 내게 그러하셨듯, 나도 누구에게든 미소 띤 인사를 건네고 싶고 작게라도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구 "봄이 벚나무에게 하는 것을 나도 너에게 하고 싶어"처럼. 봄이 언 땅에 온기를 불어넣고 만물을 차별 없이 다사롭게 감싸안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따스한 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