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내리면서 생각한다. 산 곳곳에 안겨 있는 절집에서 좀 쉬어가도 좋으련만 아예 절집 안에 발걸음조차 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 절집의 샘물도 안 마신다. 반대로 나는 절에 다니니 교회나 성당은 얼씬도 안 한다,라는 사람도 있다. 길거리 전단지는 외면하거나 받아도 면전에서 바로 박박 찢어버린다. 예로부터 우리는 남의 집엘 가면 그 집의 웃어른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그러니 교회 가서 예수님께, 성당 가선 성모 마리아님께, 사찰에선 부처님께 인사드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아닐까. 또한 이웃에 애경사가 있으면 기꺼이 가서 도왔다.
어느 해 사월 초파일 무렵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백석 시인의 영원한 연인 김영한 여사가 한때 요정이었던 곳을 법정 스님에게 기부함으로써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공원처럼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절이지만 이색적인 모습의 관음상에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물렀다. 법정 스님을 존경한 천주교 신자인 한 건축가가 만들어 봉안한 것으로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을 합쳐놓은 듯 천주교와 불교가 녹아든 형상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듯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난 화분도 경내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웃한 성북 성당과 덕수교회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성북 성당과 덕수교회, 그리고 길상사는 서로 간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하는 등 활발한 종교 간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유럽 여행 가면 종교에 관계없이 주로 성당이나 수도원을 찾고 외국 사람들은 우리의 사찰을 찾아 템플 스테이도 한다는데 왜 우리는 우리 것을 냉소적으로 보고, 다른 종교를 멀리하고 혐오하는지 모르겠다. 내 종교만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미신이고 이단이라는 그릇된 믿음, 이웃 사랑이나 자비라는 각자의 종교의 가르침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그런 믿음 자체가 이단이 아닐까.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기독교도로서 비교종교학자인 막스 뮐러의 말이다. 자기 종교만 아는 사람은 자기 종교마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