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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미, <어이없는 놈>

by 길벗


아주 맹랑한 놈을 만났다.

다섯 살짜리 꼬마다.

얘만 떠올리면 미소가 가득 고인다.

김개미 시인(1971~)의 <어이없는 놈>이

동시에 나오는 어이없는 놈이다.


어이없는 놈

- 김개미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키가 많이 컸다고 말해줬더니

자기는 많이 크지 않았다는 거야

자기는 원래부터 컸다는 거야

말이 많이 늘었다고 말해 줬더니

지금은 별로라는 거야

옛날엔 더 잘했다는 거야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자전거 가르쳐 줄까 물어봤더니

자기는 필요 없다는 거야

자기는 세발자전거를 나보다 더 잘 탄다는 거야


- 말끝마다 토를 달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다.

어른들의 칭찬이나 잔소리에 일희일비할 위인이 아니다.

자신감이 넘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네, 이놈!'하면 저도 '네, 이놈!'하며 맞받아칠 듯하다.

그런데 제 할아버지가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면 뭐라고 대답할까.

두 손 두 발 다 든 할배의 모습까지 그려보니 더 재밌다.

은유와 상징 가득한 난해한 시보다

때론 이런 동시가 얼어붙은 우리네 마음을 화끈하게 풀어주고 녹여준다.


조선 중기의 시인 손곡 이달(1539~1612)의 <대추 따는 노래>다.


이웃집 아이 대추 따러 왔는데

늙은이 문을 나서며 아이를 쫓는다

아이 도리어 늙은이 향해 말하기를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지도 못할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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