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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비를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을 가려 하네

by 길벗

웬 느닷없고 뜬금없는 '어머니 시집~' 이야긴가 할 것이다. 중국 고사 이야기다.


天要下雨 娘要嫁人(천요하우 낭요가인). 하늘(天)은 비(雨)를 내리려 하고 어머니(娘)는 시집(嫁)을 가려 하네, 라는 뜻이다. 要는 ~하려 한다는 의미다. 젊어서 남편이 죽고 어머니 홀로 어렵게 키운 자식이 마침내 장원급제를 했다. 아들인 주요종은 황제에게 여태 정절을 지키며 갖은 고생으로 자신을 공부시킨 어머니에게 공을 돌린 뒤 열녀문을 하사해달라고 한다. 황제의 승낙을 받은 주요종은 집으로 내려와 어머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 진수영은 아들의 사부였던 정문거와 결혼하기로 약속을 했던 것. 아들은 당황한다. 황제에게 정절 운운하며 어렵사리 열녀문 이야기까지 했는데 실은 정반대이니 말이다. 어머니 역시 곤혹스럽다. 아들이 황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니 말이다. 고민 끝에 어머니가 제안을 한다. 내 치마를 빨아 널도록 해라.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면 결혼을 할 것이고 빨래가 마르면 네 말을 따르겠다, 고. 그날은 하늘이 청명했는데 아들이 빨래를 해 널자 폭우가 쏟아지는 것. 어머니가 말한다. 天要下雨 娘要嫁人 意天不可遠(아들아, 비가 내리니 어미는 시집을 가는구나. 하늘의 뜻(天意)을 거역할 수가 없구나.)


이 고사는 알려지지 않다가 마오쩌둥이 인용한 덕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71년 중국이다. 마오는 전우이자 자신의 후계자이기도 했던 린뱌오(林彪)가 권력투쟁에 밀린 끝에 비행기를 타고 달아나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저우언라리(周恩來)가 격추시킬까요 하고 묻는다. 마오가 대답한다 天要下雨 娘要嫁人 由他去(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 그가 가도록 놔두라.) 마오는 승자의 아량을 보여준 것일까. 아니면 비 내리듯, 홀로된 어머니 시집가듯 패자가 도망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뜻일까.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도 천심이요, 재가를 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백성의 마음 곧 민심인데, 민심 천심을 살피겠다고 공부한 사람이 황제의 질책만 두려워하고 자신을 평생 뒷바라지한 어미의 사정은 어찌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가, 어머니는 기가 찰 노릇이다. 평생 뼈빠지게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 말로는 늘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서 출세욕과 공명심에 눈먼 고관대작의 위선을 꼬집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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