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이정록 <너무 고마워요

by 길벗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1945~)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에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 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숙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너무 고마워요

- 이정록(1964~)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 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 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 나태주 시인이 평생 교편생활을 하다가

공주의 어느 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던 중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은 물론 손도 댈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

시인은 자신이 받은 충격보다

간호하는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컸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놀라운 것은 답시다.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눈물 한 바가지 쏟아내고 싶은,

너무나 섬세하고 애틋해 당연히

시인의 아내가 썼으리라고 생각되는 답시.

하나 이정록 시인이 아내의 답시인 양 쓴 것.

이 또한 얼마나 감동이고 놀라운 일인가.

아무튼 그 덕인지 나태주 시인의 병은

기적적으로 나아지더니

급기야 완쾌하기에 이르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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