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짝사랑
이번 학기
우리 반 학생들의 애정전선에는
이상이 있다.
매번 학생들의 애정사를 묻고
남자 친구가 있느냐?
있으면 지금 우리 교실 안에 있느냐?
아님 우리 어학원 안에 있느냐?
언제부터 사귀었느냐?
결혼은 그와 할 거냐 등
내가 봐도 나는 정말
선도 없고 선도 넘는
한국 아주머니의 전형을 보이며
주책을 떤다.
정말 별로인데도
수업시간마다 이 '애정 문제'를 가지고서
예문도 만들고
말하기 활동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20대 초반 어린 학생들에게
이 이슈야말로
꿈이요 희망이요 매일의 삶이기 때문이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아무튼
오늘도 어김없이
그들의 헤어진 남친, 여친들을 소환하여
듣는 이들은 즐거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가던 차
우리 반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는
몽골 여학생 나몽은
자신이 현재 짝사랑 중임을 당당히 고백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이 나서
짝사랑의 의미,
짝사랑의 아름다움,
짝사랑의 필요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짝사랑 전문가로서.
짝사랑을 할 때 사람은 어떠한가?
그리고 짝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또 어떠한가?
내 경험으로
또 수많은 관찰로 본다면
짝사랑 중인 사람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오늘 하루가 신이 나고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아침이 밝기 전
밤새 꿈속에서 그와의 말 못 할 스토리는
이미 벌써 진작에 끝냈을 거고.
어제에 이어 지루하게 반복되는 하루가 아닌,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나?
잠시라도 마주칠 수는 있으려나?
그럼 인사나 혹시 대화를 조금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상상과 기대의 나래를 펼쳐가며
향기로운 샴푸로 머리에 한껏 향을 더하고 얼굴에 이런저런 도구들로
광채와 홍조를 좀 더 더하면서
누구나 피곤하고 나른한 아침이
그 또는 그녀에게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게 시작된다.
집 밖을 나와 걸으면서도
입꼬리는 나도 모르게 씰룩 올라가 있고
눈은 반짝반짝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상대를 찾는데
누가 보아도 누구보다도 청량하다.
항상 상대가 날 언제 볼지 모르므로
자세도, 말투도, 표정도 최고를 유지하며
기대와 설렘과 두근거림이
매 순간 함께한다.
그러니 우리 나몽도
늘 그렇게 예쁘게 웃고 있을 수밖에.
이루어지기 힘든 짝사랑.
그 사랑의 애달픈 고통의 기간이
사실은 얼마나 행복하고 꿈같았는지는
그 시간을 지나 봐야,
짝사랑이 깨끗이 끝나봐야 안다는 게
좀 슬프고 억울하긴 하다.
그럼에도 그 아름다운 시간을 살았던
어린 내가
귀엽고 그립고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이루어지지 않아 더 빛나는
우리들의 짝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