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회복과 개선의 관점에서
“해방 이후 시대적 배경”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 후 7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한때 활발한 교류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1952년 시작된 한일 회담은 양국 간에 존재하는 과거사 인식의 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우호협력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교섭이었다. 그러나 14년간 지속된 교섭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35년간의 식민통치를 원천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보는 한국의 인식과 그것을 적법하고 합당한 것으로 보는 일본의 인식은 외교협상만으로는 쉽게 풀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와 같은 양국의 현격한 인식 차로 인해 이 교섭은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겪은 후에 타결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2년 무라 담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사죄한 1995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입장을 표명하였고, 1998년 김대중 오부치 선언을 시작으로 문화, 예술, 관광 등의 민간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로 한일간의 관계가 개선되는 듯 보였지만, 다시 양국간의 분위기는 독도 영토 문제와 역사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공에 대한 배상 그리고 최근에는 수출입 규제로 인해 악화되고 있다. 당분간 한일 간을 둘러싼 역사, 영토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은 반복되고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우경화 원인”
구체적으로 일본의 우경화 원인을 살펴보면, 1990년 냉전이 끝난 이후 새롭게 등장한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일본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의 핵 개발과 태평양 그리고 일본을 사정거리로 하는 미사일 발사, 대만해협위기 등의 동아시아 안보위협에 대해 일본이 적절한 대응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불안 심리는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화하여, 일본 사회전체를 우경화로 치닫게 하고 있다.
1965년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 동유럽 공산주의 대결은 한일관계를 냉전체제의 강한 영향권 속에 두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한 정치, 안보, 경제적 결속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와 국가의 발전을 이루었다. 공산진영에 속한 소련, 중국, 북한과 대결하기 위해 한일 양국은 자유주의 진영인 미국과 안보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협력 관계를 추구했다. 냉전시기 한일관계는 반공산주의에 대한 협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양국 간 과거사에 대한 갈등과 대립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 해체, 그리고 폴란드의 비공산화 선언, 미국과 소련의 대립구도가 해체되며 냉전으로 인한 한일 양국의 결속력은 약해졌다. 그 동안 묻어두었던 역사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며 양국간의 마찰이 격화되었다. 또한 한국의 정치사회 발전과 경제력 상승으로 과거사에 대한 한국의 강경한 대일정책은 역사마찰을 심화시켰다.
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일본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으며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현대화 등으로 인한 중국 위협론은 일본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내부적 요인으로는 일본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고베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 등의 잇따른 재난, 사고 등은 일본인들을 총체적으로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불안 심리의 토대 위에서 일본의 우경화는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우경화 문제”
냉전의 종결과 함께 반공연대의식이 약화되고 한일 양국의 국가이익의 갈등과 대립이 점차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일본의 과거사 및 역사인식에 관련한 쟁점들로 인해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냉전의 종결로 인한 양국의 공동체 의식 약화, 세대의 변화로 인한 역사인식 변화, 한국정부의 강경한 대일 정책 등으로 일본의 반발과 반감을 초래하였고 일본내의 혐한 분위기 조성이 형성되었다. 또한 역사교과서 문제는 일본 내의 진보파와 보수파의 갈등을 표면화시켜 일본 국내의 정치, 사회 이슈로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자민당 정부는 반성과 사죄를 반복하여 왔으나 다수의 보수적인 정치인과 관료 등에 의해 외면되었으며, 일본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호소카와 수상과 무라야마 수상의 사죄 발언은 국민의 정서보다 앞서가는 발언으로 평가되며, 이는 일본 국내의 정치적 쟁점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과거 문제에 대한 보수진영의 집단적 발발로 자민당 중심의 우파 정치인들은 조직적인 반발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망언 등의 발언을 표출하며 자신들의 역사 인식을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과 국민의 자신감 상실, 이에 대한 한국의 민주화 발전과 국가 경쟁력 상승은 일본의 우경화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1980년대의 한국은 대일관계의 악화로 인한 경제 불이익을 고려하여 일본과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 일본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일본은 경제침체와 더불어 국민들의 자신감 상실로 인한 분위기 속에서 수정주의 역사사관에 쉽게 빠져드는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일본사회는 급속한 우경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의 우파 지식인 활동확산과 헌법 개정을 위한 헌법조사회가 설치되었다. 이와 같은 20세기 후반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만해협을 둘러싼 갈등과 북한 등의 안보위협 요소의 증대에 따른 국내적 위기의식의 심화, 중국의 대국과에 따른 일본의 경계심리의 확산, 일본경제의 장기침체로 인한 위기의식, 일본국내의 혁신세력의 몰락으로 보수화에의 견제력 상실 등을 들 수 있다.
“대일 대응 전략”
과거사와 역사인식의 문제는 양국의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시작된다. 자칫 감정적으로 대처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하며, 냉철하게 국익을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일본과 많은 교역을 하고 있다. 따라서 대일정책의 수립과정에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일교역에 손실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은 한일협력관계가 손상될 경우, 일본보다 한국의 피해가 크다. 특히 관광과 투자부문의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한일관계의 현황을 고려하여, 일본과의 대립구조 대신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일본의 보수, 우경화 세력과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건전한 시민세력, 진보지식인과 더불어 국제사회 단체와 연대하여 세계시민의 보편적인 입장에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정부는 1995년 무라야마 수상의 담화를 공식적 입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 내의 우경화 경향과 현재 일본의 상황으로 보아 지금 당장 우리의 입장을 설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반일감정을 앞세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더욱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안보정책의 방향이다. 일본은 이미 주변사태법의 제정을 통해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았고,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을 신설해 자위대의 해외 파견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군사력을 긴장조성이나 군사적 경쟁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일 설득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냉전시기와 같이 미국 중심의 한-미-일 안보동맹 체제와 같은 다자간의 안보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동맹이 지속되는 한 일본은 동아시아의 위협요인으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에 대한 재평가 필요하다. 협정 당시 미진했던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한일협정의 역사적 재평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부분과 일본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의 합일점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결론“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이다. 편협한 국가이익만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자유, 평등, 인권, 국제협력 등의 보편적인 가치의 추구를 지향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민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국제사회와 연대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여,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역사마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일본의 겸허한 태도와 피해자인 한국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관용적 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한일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관점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인 가치와 보편적 규범을 공유하는 국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가치와 규범의 공유야 말로 한일 관계와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