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 사는 시민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상상
“그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것들”
1980~90년 유년시절 ET, 쥬라기 공원, 백 투더 퓨쳐 등 SF 영화를 보며 2020년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우주선을 타고 행성간 여행을 한다거나 외계인과의 만남 등을 상상했었다. 또한 유전학의 발전으로 고대 지구에 서식했던 공룡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2000년을 기점으로 인터넷이 급격하게 발달하였고,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발달한 산업화 시대와 민주주의를 기반한 자유경제시장은 몇번의 위기상황을 경험하며 진행 중이나 그 추진력을 잃어버린 듯하다. 2020년의 시작과 함께 전세계로 퍼져나간 COVID-19로 지난 몇 십년간 글로벌화를 외치던 국가들은 국경을 닫고 바이러스를 막는 명분으로 세상과 고립을 선언하였다. 현재는 30년전의 우리 상상보다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예측했던 수많은 가정 중의 하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향후 30년후의 미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기후 변화와 자연 재해 그리고 탈 도시화”
2000년 이후 지구에는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인한 맨틀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의 상승을 초래했다. 이로 많은 섬들이 바다아래로 잠겼고 해안도시들 중 일부는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특히 많은 학자들이 예상한 일본의 난카이 트라프 대지진 발생으로 일본은 동일본대지진의 10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지진의 간접여파로 한국의 동해안에도 여진과 쓰나미로 부산과 포항에 이르는 동해안의 일대가 피해를 입었고 많은 고층 건물이 파괴되었다. 또한 캘리포니아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환태평양 지역에서도 거대 지진 발생으로 수많은 희생과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었다. 꾸준히 상승하는 지구 온도로 인해 매년 거대한 산불이 발생하며 몇 개월에 걸쳐 산불을 진화하는 등 지구의 삼림은 파괴되었고 대기는 복사열로 점점 더 상승하며 사막화가 진행되었다. 지진과 산불 등 자연재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고 자연속으로 이주를 한다. 기후의 변화로 대도시의 경우 대기의 질이 아주 악화되었다. 도시 사람들은 외부활동을 극히 제한하였고, 지진 쓰나미로 인해 고층 건물은 건축이 제한되었으며 도시의 지하화가 진행되었다.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2030년 남한과 북한은 경제적으로 자유 무역을 시행하고 러시아 횡단 철도를 이용해 남한에서 유럽까지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면서 서서히 개방을 시작한다. 2040년까지 10년동안 북한의 경제 개발로 인해 국내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기온상승과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황폐해진 콘크리트 덩어리 남한을 떠나 대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북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콘크리트로 건물을 짓지도 자연환경을 침해하지도 않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서울의 고층 아파트들은 인구 감소와 노후화로 인해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채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지역이 인기가 많은 지역이 되었다. 더 이상 서울시내의 최고 학군을 따지지도 않고 출퇴근 교통 체증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재택근무는 물론, 모든 업무는 메타 세상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더 이상 출장이나 출근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의사결정과 같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시켜 국가나 정부의 역할 또한 축소가 되었다. 더 이상 유능한 국가 지도자들에 의해 국가를 운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술은 발달되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모두 인공지능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나 정부의 개념보다 거대한 기업에 의해 사회질서가 흘러간다. 이미 국가는 신뢰를 잃어버렸다. 방역, 안전, 위생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통제하고 계획된 환경으로 몰아넣었고 결국에는 시민사회는 이에 반발하였고 기술의 발달보다 합리적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국가나 정부의 역할은 기술로 대체되었다.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다고 생각한 법이나 공권력의 울타리 안에서 권리를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프로그래밍으로 명시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간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내 집에 대한 계약서를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여태껏 정당하고 공평하다고 생각했던 법이나 공권력의 울타리를 벗어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변조할 수 없는 공정성을 제시하게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영화를 보면 항상 인간 중심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의해 발전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우주 행성 침략을 정당화시키는 영화도 있다. 지금도 화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거나 식민지의 대상으로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지금 세상은 코로나로 인해 가상현실, AI, 우주, 로봇 등의 기술혁신 가속화에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다. 마치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에 가득차있는 것처럼 말이다. 날아가는 자동차, 3D 프린터로 맘대로 요리해서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옷, 가상 세계에서 즐기는 오락거리 등, 도대체 인간은 놀고, 먹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인가? 왜 하나같이 미래를 인간의 이기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인가?
산업화로 인해 도시에서 병든 사람들이 자연속으로 들어가서 마음의 평정을 얻고 최소한의 물건으로 자아의 평온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이러한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날아가는 자동차, 우주 여행, 가상 현실, 편리한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산과 나무 그리고 맑은 공기 푸른 바다라고 생각한다. 한 학기동안 지구시민의 꿈 수업을 들으며,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미래 기술이 발달한 세상을 상상하며 한편으로는 흥분되기도 했지만 파괴된 지구의 자연을 상상해보았을 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떠난다. 온갖 최신화된 장비를 트렁크 한가득 싣고서, 자연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 자연속에서도 문명의 혜택을 듬뿍 느끼고 돌아간다. 이러한 자연이 주는 감동을 30년 후에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