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은 왜 자신의 고향을 잘 벗어나지 않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현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물론 성인이 되어 대도시로 이주하는 경우는 많겠지만 정착한 후에는 쉽게 자신의 주거지를 옮기지 않는다. 또한 직장도 자주 옮기지 않으며 물론 이사를 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이와 반대로 한국 사회는 자신의 주거지를 자주 옮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찾아, 우리는 쉽게 떠도는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기를 갈망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한 동네에 터를 잡고 오랫동안 살아본 적이 없다. 아마 가정환경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급변하는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우리들에게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이러한 삶에 익숙해져 오히려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 이러한 질문 속에서 “과연 환경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이것은 나의 관심사이다. 그리하여 나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였고 해외에서 체류하며 실존 경험을 통해 다른 나라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2017년 홀연히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처음으로 일본의 한 지역 마츠리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잠시나마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경이로운 축제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황홀한 시간여행이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마츠리와 처음 대면한 순간이었다.
“축제, 그것은 무엇인가?”
축제는 세가지의 성격을 지닌다. 첫번째는 정치, 의례적 성격이다. 고대부터 집단을 형성하며 권력가들은 제의를 통하여 자연과 신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신성함과 경의를 표하며 이를 통하여 군중을 지배하였다. 두번째로 축제는 유희적 성격을 지닌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거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의 제의는 점차 유희적인 성격을 지님으로써 일반 군중들과 함께 화합하는 성격으로 변해가며 우리의 생활 속으로 널리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체험이다. 축제에 참여한 개인은 축제 속 종교적 의례와 다양한 형태의 의례를 통해 정화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일상의 시간을 탈출하여 축제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신과 만나고 우리의 소망을 기원한다. 축제의 시간은 무한히 회복할 수 있고 반복 가능하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제의를 통해 염원을 기원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때 개인의 염원은 개개인의 바램, 종교적 정화, 현실에서의 행복 등 개인적인 것이거나 나아가 공동체의 안위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의 마츠리”
일본 마츠리의 원형은 주로 신령 등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신사나 절을 주체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풍작, 사업번창, 무병장수, 가내안정 등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토요하시 마츠리의 원형은 전후 폐허가 된 일본을 부흥시키기 위한 시도로 상공회의소가 주도하여 시작되었다. 하지만 상업주의 성격이 강해 민간의 호응이 낮았으나 민간이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일본의 3대 마츠리 중 하나가 되었다. 패전 후 전쟁의 영혼을 기리는 성격이 혼재되어 초혼제와 마츠리를 결합하였는데 역사적 사실로는 전쟁에 참여한 전사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초혼제의 성격이 더해져 지금까지 그 성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일본의 마츠리에 대해서 무작정 좋다고 함께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사실을 이해하고 축제의 장점만을 취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마츠리의 진행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축제의 기획부터 평가까지 모든 과정에서 지역민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오모리현의 네부타 마츠리는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을 통해서 제작에서 비용까지 모금할 뿐만 아니라 제작, 관광 홍보 활동과 같은 자원봉사 활동까지 참여하고 있으며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의 원형인 ‘지역 네부타’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의 축제 환경”
국내의 경우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축제가 증가하였고 2000년을 지나며 축제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대 초중반 50여개에 불과했던 지역축제는 2008년 920여개로 증가하였고 그 내용으로는 문화예술형, 지역특산물, 전통역사문화, 생태자원 등의 형태가 있다. 하지만 국내의 축제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특성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획일적인 이벤트 성격의 행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해당 지자체와 서류상 계약된 이벤트 기획사, 대행사에 의해 획일적이고 상업적인 프로그램 구성이 대부분이며 이 또한 2~3년 개최하였다가 인기가 누그러지면 소멸되는 축제가 대다수이다. 또한 국고나 지자체의 재정,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여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 지역주민과 축제 참여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무대의 사회자, 초빙된 연예인이 중심이 되는 공연을 하고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에만 그치는 일방적인 소통의 방식의 축제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창의적 축제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써,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으로 창조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내용과 프로그램으로 꾸려져야 한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규칙과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비일상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것을 기대한다. 비일상적인 경험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통해 실현될 수 있으며 이러한 비일상적인 신선한 경험은 삶의 일상으로 회귀하여 잠재된 에너지를 이끌어내어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기폭제로서 작용될 수 있다.
“조용한 사회, 민폐를 중요시하는 사회”
일본 마을은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일본을 여행하거나 살아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느껴보았을 것이다. 저녁이 되면 활기를 띄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일본은 밤이 되면 고요해진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답답할 정도로 집집마다 모든 창문의 커튼을 닫고 생활한다. 이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엄격한 규칙이 존재한다. 자전거의 경우 지정된 주차구역에 주차비를 지불해야 하며, 헬스장이나 지하철, 버스, 학교 등 에서도 지켜야 할 규칙이 많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으나 익숙해질수록 규칙을 지킴으로써 모두가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답답할 정도로 많은 규칙들 속에서 엄격한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축제기간에는 모두가 축제의 열기 속으로 뛰어든다. 매일이 축제의 연속이라면 그것의 감흥을 쉽게 느낄 수 없어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축제가 가지는 힘이자 그 매력인 것이다.
“코로나 19로 잃어버린 축제, 관광, 사람들과의 관계”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삶의 많은 부분들이 사라졌다. 여행, 축제, 사람들과 나누던 정겨운 시간들의 부재야 말로 코로나로 인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큰 상실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서서히 코로나로 인해 닫혔던 국경이 열리고 대면을 통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시작되고 있다. 축제의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즐기는 시대가 다가온다. 그것은 새로운 축제의 장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3차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문명의 발전은 우리에게 윤택한 삶을 제공하였다. 우리는 윤택한 삶을 누리며 열심히 일하고 부를 쌓고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중요시 여기던 노동의 가치는 기술의 발달과 자동화로 점차 대체되어 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비대면을 통해 업무나 교육이 대체되면서 그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인간의 노동이 기술로 대체된다면 우리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창조적인 생각과 유희를 통한 삶이 아닐까? 지난 과거 대다수의 사람들은 농경 사회 혹은 산업화 사회를 거치며 농부나 노동자로서 삶을 살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명절이나 휴가를 통해 짧은 휴식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구글이나 애플 등 초일류 기업들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노동을 바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의 축제나 휴가의 역할이 우리에게 잠시나마 삶의 고됨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해냈다면 앞으로의 축제는 무엇을 의미할까? 또한 점점 줄어드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동화로 인하여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이 상황 속에서 축제는 어떠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진정한 축제가 시작되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는 아이, 청소년, 어른, 노인 등으로 인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별로 나누어 구분하는 특징이 있고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어 자신과 비슷한 공감대를 지닌 사람들과 그룹을 형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강하다. 우리가 존재할 뿐 ‘나’라는 개인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무리속에 존재하며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신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이며 그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것이다. 개인이 없는 사회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은 나올 수 없다. 나의 생각보다 우리의 생각이 중요시될 때 나는 없어지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나이 30이 되어도 40이 되어도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왜일까? 그것은 한 번도 진지하게 자신의 ‘호불호(好不好)’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보다 항상 주위를 신경 쓰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정해진 틀안에서 우리라는 울타리 안으로 자신을 맞추는 것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준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나는 학생, 사회 초년생, 직장인, 교사, 사업가 등 어떠한 타이틀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그 타이틀이 벗겨지는 순간, 혼란이 시작된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2014년 내가 31살 되던 해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막연한 삶의 무게를 느꼈을 수도 있고 낯선 환경에서 내 자신과 대화를 통해 나를 알고 싶었다. 중세시대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위에서 수많은 순례자, 여행자들이 자신의 소망을 품고 걸었던 길 위에서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잠시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도보 순례의 중간 어느 마을에서 나와 일행은 마을의 낯선 축제에 초대된 적이 있다. 낯선 이방인에게 음식과 술을 주며 함께 어울리게 만들었던 그 곳, 그러한 축제의 장은 내 인생에서 따뜻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순간 경험했던 사람들과 공연, 어울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일본 문화의 이해를 수강하며, 강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가며 지난 몇 주를 보냈다. 주제를 다소 벗어나기도 하였지만 내가 느낀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미칠 수 있는, 우리에게 살아갈 용기와 의미, 그리고 축제의 경이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축제를 통해 실현 가능 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올바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축제의 장이 펼쳐지리라 생각한다. 곧 우리의 삶에도 축제 다운 축제가 자리잡아 축제를 통한 신비를 경험하며, 우리 일상이 더 이상 무거운 어떤 짐이 아닌, 더 집중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일상으로 다가오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