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타 사토시
"들어가는 글"
선진국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일본인 교수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내용으로 저자의 눈으로 본 일본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국민소득, 국토의 면적, 인구, 세계적인 기업 등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가 폐허가 된 이후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상황을 등에 업고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조국 일본에 대해 과연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6가지 큰 주제로 나누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책이 쓰인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과연 유효한 질문인지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일본이 선진국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 중의 일부라고 생각을 한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현재의 한국이 과연 이 책을 쓴 시점의 일본과 비교했을 때 한국도 선진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을 해보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재 상황과 비교해 가며 진정한 선진국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국가적인 관점과 개인의 관점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후진적 정치의 현실"
일본의 정치, 행정에는 부정부패, 정경유착, 담합 등으로 얼룩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오고 있으며 국민들은 오랜 기간 이어져온 부정부패의 고착화를 체념한 듯 받아들이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의 정치는 굉장히 좌, 우 진영의 논리가 자주 뒤바뀌고 얽혀 있는데 어떤 이는 이러한 점이 한국 정치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의 정치는 변함이 없고 사람들 또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논리로 비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 또한 한국 사람이 가지는 편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해보지 않고서 그저 단순한 논리로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삶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상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잠시 생활을 해본 경험으로 일본의 삶의 속도는 안정적이다. 이것은 정치의 부정부패를 떠나 일본 자체가 크게 정치로 인해 싸우고 고성방가 하고 주먹다짐을 하는 등의 행패는 없다. 길거리나 뉴스 전광판에서 정치 선동과 시시비비를 크게 논하지 않는다. 시위하며 스피커로 구청이나 시청 앞에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는다. 반면, 한국의 사회나 국회는 좀처럼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모두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듯 삼삼오오 만남의 장소가 생기면 정치얘기 혹은 신변잡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정상적인 삶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일본국민 5000만 명분의 연금기록이 유실된 사건을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명확한 법규정을 통한 행정 업무가 아닌 행정지도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좌우되는 일 처리 방식 또한 일본을 선진국으로 볼 수 없는 중요한 사례라고 보고 있다.
일본의 정경유착은 오랜 관습처럼 고착화되어있는데 경단련의 자민당과 정부에 대한 정치헌금은 그 용도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불법 비리 자금으로 사용되는 등 투명하지 못한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일본의 정치계는 혈연과 지연 그리고 정치인은 가문을 이어 내려오는 관습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한번 자리를 꿰차면 어떤 식으로든 정계를 떠나지 않는 듯하다. 이러한 관습은 고착화되고 안주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투표로 귀결되는 평가가 아닌 분기별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퍼포먼스를 내지 못하는 경우는 자격에 제한을 두거나 하여 위기의식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의 국민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투표 시즌에만 의견을 낼 것이 아니라, 평상시 주민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고 공동체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그러진 교육"
일본의 교육에서 문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첫째, 교사의 자유의지 박탈함으로써 획일화된 교육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는 방식의 억압이며 이러한 획일화와 탑다운 방식의 교육을 통해 보편적인 학생들을 길러낼 수는 있을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보편적인 노동력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서 개인이 주체가 되어 자율적인 인생을 설계하고 보람을 느끼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번 일탈을 경험한 적이 있다. 7년간 근속하던 회사를 과감하게 퇴사하고 해외로 떠났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만해도 안정된 회사에 입사를 하고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통념이었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이러한 사회적 통념도 많이 바뀐 듯하다. 우리 사회시스템 또한 일탈을 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너무 향유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잣대와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을 나는 경험할 수 있었다. 일례로 경력 단절이 발생하거나 경력의 변경이 있는 사람은 재 취업을 할 때 인사담당자로부터의 질문에 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재 취업 혹은 재기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를 통해 일본 사회나 한국 사회나 굉장한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체주의와 다를 바가 무엇일까? 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배우고 어울려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내버려 두지 않고 세뇌하려는 국가, 즉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는 외형적 성장한 선진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유럽과 비교하며 수치적인 부분과 사례를 많이 들고 있지만 결국 그 내용이 지적하는 것은 자유 박탈과 강압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름뿐인 남녀평등"
1978년 '남녀공동참가사회기본법'이 만들어졌지만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그 실상은 굉장히 불평등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관료 직에 여전히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내부에서는 적극적인 차별 수정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도 원래는 남성이 유리한 구도였으나 1960년대 여성의 활발한 참여권 운동을 통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지금은 남녀평등의 롤 모델 국가가 되었다. 현재 노르웨이 내각은 전체 인원의 40%를 여성관료로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노르웨이의 예를 보았을 때 할당제를 통해 여성의 참여를 높이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이다. 남녀관계는 우리들의 인간성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사회, 정치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보장하지 못하는 나라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스웨덴의 경우 옴부즈맨이라는 기관을 통해 각 분야에서 발생하는 비리나 부정을 점검하고 조사하는 역할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녀평등 옴부즈맨이 다루는 안건에는 고용시장의 남녀차별도 포함된다. 이러한 실질적인 조사를 통해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일본의 표면적인 법 즉, 말 뿐인 평등을 벗어나 실질적인 평등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남성의 늦은 귀가 시간, 육아휴직에 대한 부담감 등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일본은 평등의 관점에서 선진국이라고 보기 어렵다.
직장에서의 남성들은 공격적인 형태나 승부, 상하관계로 서로의 관계를 구축한다. 그 때문에 남성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한다. 스스로 약한 측면을 숨기고 안에 쌓아 두면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공격적인 성향은 자신의 내면을 공격하거나 때로는 폭력이라는 형태를 띠고 약한 자에게 향한다.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남성이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지만 과거처럼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 이런 식의 전통적인 남성상의 혼란은 유럽 각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남성의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상담할 기관이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열악한 노동실태"
철학자 보부아르가 1966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은 풍요로운 국가지만 국민은 빈곤하다는 말을 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지만 현재의 일본 사정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많은 국민들은 먹고사는 일에 바쁘다. 삶의 질은 긴 노동시간에 의해 제어권을 잃었다. 독일의 노동시간 대비 일본의 노동자들은 연간 400시간 더 많은 일을 한다. 노동기준법이 있어도 서비스 잔업이라는 관례에 따라 노동자들 스스로가 잔업을 만들어 냈다.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과로사, 정신질환이 증가하고 자살률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상황이다.
또한 도시화로 인해 출퇴근시간이 왕복 2시간 걸릴 뿐만 아니라 귀가 시간도 밤 9시가 평균이다. 토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 있어 공공 단체가 공영주택을 지을 토지도 만족스럽게 확보할 수 없다. 일본의 주택정책은 후퇴하고 통근전철은 혼잡으로 몸살이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는 비정상적인 행위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전철 안의 치한 문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가는 글"
일본은 외형적으로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빠른 성장 속에 감추어진 문제점들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국가의 성장을 위해 소수의 다양성을 배척하고 크고 잘 나가는 선박을 만들어 모두 크고 잘 나가는 선박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한 성장의 시대였다. 전후 모두가 잘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 속에서 다수는 희생을 강요당하였다. 교육에 대한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획일화된 경쟁구도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감추도록 강요당하였다. 자아를 돌아보는 것을 잊게 만들고 노동자로 살도록 강요당하였다. 남녀평등이라는 단어는 표면적일 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다. 책은 북유럽 복지국가를 예로 들며 일본의 상황을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북유럽의 국가들은 이미 18세기 이전부터 철학과 인문학을 바탕으로 개인과 국가에 대한 성찰과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었다. 그에 반해 아시아의 국가는 제왕주의 시대에서 식민지 이데올로기를 거쳐 군사 전쟁의 시대로 바로 넘어오며 사회 시스템과 개인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물질과 경제적인 성장의 시대 속에서 몇 세대를 살아왔다. 빠르게 흘러가는 산업화 시대 속에서 한 세대는 자신과 주변을 잠시 통찰하는 시간과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이 발간된 이후 10년간 일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일본도 변화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각종 사회 문제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변화의 시작은 인식함에 있다. 경제가 성장할 때 모두가 잘 살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이 정도 고통은 감내할 수 있다는 정신도 깃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의 성장 이면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고 실업률, 인간소외, 자연재해 등 예상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발생했다. 발생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인지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즉 일본의 진짜 얼굴을 파헤치며, 앞으로 변화가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부분에서 정량적인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