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하는 방향에 대해
“시대적 배경”
19세기 말은 서양 세력의 식민지 쟁탈과 일본의 동북아시아 침략을 목적으로 한 팽팽한 세력의 대립이 있었던 시기였다.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로 대표되는 서양열강의 문명화, 근대화를 위한 계몽 정책과, 선진제국을 목표로 한 국민교화 정책을 펼치며 철저하게 국익을 우선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다.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서구의 외교 방식은 단순히 힘의 논리로 비쳐졌다. 당시의 일본은 봉건사회로 영주와 무사 그리고 서민으로 구성된 계급과 권력이 존재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들의 좁은 시야로는 힘을 길러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한 논리로 이해되는 시기였다.
메이지 정권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에 의해 빠른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며,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지시키고 일본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창한 탈아입구 사상처럼 서양의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보며,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식민지 계획을 세우고 전쟁을 준비하였다. 특히 후쿠자와 유키치는 탈아를 주장하며 한국과 중국에 대해 문명화를 거부한 미개한 국가로 인식했다. 지금 일본이 이 두 나라를 먼저 개화시키지 않으면 서양에 의해 분할 점령될 것이라 주장하며 아시아에서 먼저 문명국이 된 일본으로서 식민계획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일본과 반대로 조선은 청나라 외의 국가와 교류를 전면 거부하는 쇄국정책을 펼쳤다. 1875년 일본은 함대를 이끌고 동해, 남해, 황해 등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것을 계기로 조일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부산, 원산, 인천의 항구를 개방하도록 하였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흥선대원군이 일시 재집권하였으나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며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진다. 개화파는 오랜 기간 중국의 속국과 내정간섭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미 조선은 서구와 일본 세력에게 힘의 논리를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시기를 놓친 상황이었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전략적인 영토로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은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중국, 일본, 몽고 등 심지어는 삼국간에도 영토전쟁이 빈번했던 만큼 전략적 요충지임이 분명하다.
20세기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기를 겪으며 한반도는 아직도 반세기 이상 분단된 채로 남아있다. 중국은 20세기의 치욕을 딛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미국과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세력의 이동으로 인한 변화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겪은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과거를 제대로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이동에 관한 법칙이다. 엔트로피 즉 쉽게 말해 에너지는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증가는 하지만 절대 감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 또한 수많은 전쟁을 통해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하기는 하였으나 반대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에 대한 인식 그리고 수용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 창출”
우리가 지난 전쟁과 식민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위의 열역학 법칙처럼 세상 모든 만물은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조선시대를 돌아보면 유교사상과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조선이 시작되고 일제 식민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월의식으로 외부세계를 거부하였다. 반면 조선보다 앞선 고려시대에는 개방을 통해 동, 서방과 활발하게 교역하며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킨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신분제, 유교사상 등의 사대주의에 지나치게 집착하였다. 뛰어난 사상가를 배출하며 내면 깊은 사고와 의식의 발전은 있었으나 이를 실용화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술과 무예를 천시하였고 일본으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을 정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영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지원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21세기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공무원이나 화이트 칼라 직업을 선호하고 있다. 기술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 도대체 지금과 조선시대를 비교하여 사람들의 인식에는 유효한 변화가 있었을까? 식민통치를 경험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룬 지금에도 기술을 등한시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미래가 있을까?
한반도의 식민지배, 전쟁과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 그것은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 가치의 창조는 내면의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인류에게 유용한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의식 수준의 변화이다. 한국은 좁은 땅이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이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은 다시 말해 개인간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할 소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의식적인 개인간의 질서가 지켜질 때 물리적인 충돌과 같은 불편한 일을 방지할 수 있다. 핀란드나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버스에서 줄을 설 때 앞 뒤로 1미터 이상 거리를 둔다는 얘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중요시하고 서로 존중하는 암묵적인 룰인 것이다. 이것을 개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존중과 배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본에게 있어서는 피해자이지만 베트남에게는 전쟁 가해자이다.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무시, 부동산 투기에 열 올리는 국민과 그것을 조장하는 언론을 보며 마치 우물안에 갇힌 개구리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현재 한국은 바다와 분단으로 인해 고립된 섬나라이다. 조선시대의 쇄국의 시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우리는 G7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선진국 진입에 대해서 우월의식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우월의식을 갖기 전에 우리의 선조들이 깊은 통찰력으로 쌓아 올린 훌륭한 사상과 정신을 이제 실용화해야 하는 시기이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말로만 선비정신, 유교사상, 도덕성, 예절을 논할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의식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정치와 삶의 방식에 대한 변화이다. 한국은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그리고 문민정부로 넘어오며 상당한 민주화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고, 국민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인들은 진심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는 과연 의문이다. 선거철이면 표를 얻기 위한 유세에만 열을 올릴 뿐 당선 후에는 과연 얼마나 노력하며 성과를 나타내는가? 이는 대입준비를 하는 고등학생과 같은 모습이다. 대학 입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한다. 그리고 입학과 동시에 안주한다. 취업도 마찬가지이다. 취업 문에 통과하는 순간 우리는 안도한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인식이다. 왜 그런 것일까? 남들과 같이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교육받았고 자랐기 때문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정답지 속에서만 그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배움과 성장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어떤 종착지를 향해 전력질주 하는 삶이 아닌 매 순간의 과정을 즐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의식의 변화가 있을 때 이스라엘과 같이 온 국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심으로 움직이고 돈과 권력을 탐하는 정치인이 아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정치인이 많아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