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장하던 시기는 개인보다 공동체가 더 중요시되던 때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손수건을 접어서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닐 적부터 공동체교육이 시작되었었다. 한 아이가 짝꿍 아이를 놀리다 둘이서 치고받고 싸우게 되었는데 담임선생님은 반 친구들 전체에게 벌을 주셨다.
나는 싸운 친구들만 혼내시지 않고 전체 아이들을 혼내시는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되었다. 불합리한 체벌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싸우지도 않았는데 벌을 받으니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합리한 일들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고생들에게는 교련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교련 수업은 주로 적십자 가방을 어깨에 메고 머리엔 베레모를 쓰고 병사들처럼 줄을 지어 행열을 하였다. 같은 줄에 선 학생 중 한 명이라도 줄이 틀어지거나 발이 맞지 않으면 그 줄은 전체적으로 벌을 받았다. 당시 의식이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불만을 품었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소위 두발 자율화와 교복자율화시대다. 흑백색 아니면 군청색 교복으로 통일하여 사회는 교복 착용으로도 학생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었다. 머리도 남학생은 빡빡머리고 여학생은 단발머리만 허용되다가 모두 자율화가 된 것이다. 여학생들은 단발머리가 아닌 커트와 긴 머리를 할 수 있었고 교복은 사라지고 사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단지 학교 로고가 찍힌 둥그런 학교 배지를 가슴팍에 달고 다녔다. 통제의 분위기에서 자율적 분위기로 바뀌니 학생들의 생각이나 의식도 자율성이 많이 반영되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학교문화는 경직되어 있었다. 선후배 사이에 신고식과 소위 소방훈련이라는 것이 있어서 선배들이 갑자기 후배들을 소집하면 후배들은 영문도 모른 체 모여서 선배들에게 훈계를 받으며 심지어 남학생들은 선배들에게 후배들이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기도 했다. 이런 풍습은 관례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학교의 관례적 풍습을 교복자율화 세대들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후배들이 선배들의 불합리한 요구에 응하지 않고 거부의사를 당당히 밝혔다. 당시 선배들은 참으로 어이없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후론 선배가 후배를 집단적으로 신고식이니 소방훈련이니 어쩌고 하면서 괴롭히는 일은 없어졌다.
대학교 교수들과 선배들은 우리 학년에게 개성이 뚜렷하다고 수군거렸다. 대학가에서 몸에 꽉 끼는 쫄바지와 샛노랗고 새빨간 원색 옷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개성이 표출되기 시작한 세대라고 해도 될 듯하다. 대학가의 문화는 곧 사회적으로도 확산되기 시작했고 매스컴이나 언론에서도 개성시대 또는 개인주의라는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였다. 개성이 존중되던 사회에서는 많은 예능인과 창의적인 인재들을 발굴하게 되었다. 이것이 개인 중심 사회의 긍정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긍정성들로 인해 개인은 더욱 발전하고 개인주의가 싹트게 되었는지 모른다. 개인의 중요성은 개인정보에 대해서도 보호받을 권리를 찾게 된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어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개인을 상대하는 단체나 공동체들은 개인정보동의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개인정보 동의서는 어디서나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개인정보동의에 의해 개인정보가 누출되는 한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개인정보를 소유하고 업체 간 사고파는 행위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대출정보, 게임, 도박 등 온갖 스팸정보들이 전화 핸드폰, 메일로 들어온다. 특히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을 땐 기분이 언짢다. 어떻게 내 핸드폰 번호를 알았을까...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개인주의의 딜레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혼족들이 많아지는 우리 시대에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은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네트 워킹하는 우리 시대 사회는 개인을 더욱 옥죄어 얽매이게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보면 발전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산업이 발전하니 공해가 자연을 망치고 개인이 발전하니 공동체가 훼손되고 문명이 발전하니 개인은 더욱 위협을 받는다. 그렇다면 적당히 발전을 멈추는 것도 현명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