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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Jun 22. 2024

혈전이다

낮은 공격성으로는 참패가 답인가?

 기차역에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예매한 서울행 열차가  출발하고 있다. 나는 가뿐 숨을 참느라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떠나가는 열차 꽁무니를 바라보노라니 슬픈 감정이 내 가슴을 스친다.

기회를 한번 놓치고 나면 새로운 기회를 붙잡기엔 많은 번거로움이 따른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의 호기로운 성품 때문에 매번 기회를 당차게 떠나보낸 적도 많았었다. 새로운 기회를 붙잡기 위한 번거로움보다 새롭게 시작되는 기회가 달콤했었기에 나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것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꾸만 위축된다. '이제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있을까?' 아니 기회가 다가오더라도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약해져갈수록 욕심만 쌓이는 것 같다. 이미 움켜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예매했던 열차표를 반환하고 다음 열차표를 예매했다. 다행히 손가락의 수고만 있었을 뿐 몸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떠나버린 열차 홈에서 의자에 앉아 핸드폰에 있는 코레일 앱으로 예매를 했기 때문이다.  다음 열차는 20분 후에나 탑승할 수 있었다.  플랫폼에서 20여분의 기다림이 내 마음을 조여들게 하는 것을 느꼈다. 기다림은 나의 약점 중 하나다. 지나간 내 발자취를 돌아보니 '조금만 참고 기다렸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참지 못하는 사람은 수고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 시험문제를 풀고 몇 초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해 정답을 찾느라 땀을 흘리곤 했었다. 겨우 답을 다 찾고 나면 곧바로 선생님께서 정답확인을 해주시러 오셨다.


나는 요즘 삶의 혈전을 벌이는 중이다. 무언가 싸움을 시작했다면 이길 때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바닥나버린 긍정적 에너지(공격성)로는 패잔병이 될 수밖에 없음을 경험한다. 사방이 적인데 방어할 힘도 공격할 에너지도 없다. 그저 구겨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하고 빼앗고 빼앗기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한때는 재밌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어간다. 사회인이 되기 위해 취준생 대열에 끼어서 면접도 보고 많은 경쟁자들과 대결도 해보았다. 저마다 야심 찬 눈빛으로 경쟁대열에서 승자가 되고자 한다. 마치 수능으로 서열화하는 입시생처럼 말이다.


 혈전의 날에 칼을 갈아도 모자랄 판에 굳이 승패로 나누어지는 것 외에 다른 답은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때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를까 봐 조바심이 난다. 줄다리기 선수로 출전했으면 열심히 줄을 당겨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집념이 얕아진 건 공격성이 낮아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집중력이 약하거나 지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인가? 암튼 모를 일이다.

분명한 건 내 칼을 겨누지 않았기에 상대의 칼이 내 심장을 찔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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