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화] 코끝에 닿은 숨결
바닷가로 가는 길, 우리는 아까 나눴던 책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빠, 저 책 선물하는 거 진짜 좋아해요. 서울 가서 만나면 책 한 권 선물해줄게요."
"오, 좋지. 나는 보통 친구들한테 책갈피를 선물하는데."
"책갈피도 좋지만, 저는 책 자체를 주는 게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 생각하면서 고른 책을 건네는 느낌?"
새로웠다. 선물의 방식도, 그 선물에 담긴 의미도. 산책로를 따라 길게 걸으며 우리는 취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오빠 취미가 또 뭐 있어요?"
"음... 향수?" "어? 향수요?"
"응, 향수에 관심이 좀 있어서 뿌리기도 하고."
그때 그녀가 킁킁거리며 내 쪽으로 살짝 다가왔다.
"아, 그래서 오빠한테서 좋은 향이 나는구나. 무슨 향이에요?"
"선물 받은 향수인데, 맡아볼래?"
나는 무심코 내 손목을 그녀 쪽으로 가져다 댔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내 손목에 코를 가까이 댔다.
시간이 멈췄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팔에 스쳤고,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손목 위로 쏟아졌다.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들리는 건 오직 내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는 소리뿐이었다.
"음... 진짜 좋다."
그녀가 고개를 들며 미소 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손목에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힌 기분이었다.
조금 더 걸어 해변가에 도착했다. 파도가 철썩이며 모래사장을 적시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대화는 이상형으로 흘러갔다.
"오빠는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음... 솔직히 잘은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처음 봤을 때 뭔가 꽂히는 게 있는 것 같아."
그녀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똑같이 물었다.
"너는?"
"저는요... 다정하고 말 잘 통하는 사람이 좋아요."
그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이 꼭 나를 가리키는 것처럼 들렸다.
착각일까? 아니, 착각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파도 쪽으로 뛰어갔다. 파도가 빠지면 앞으로 가고, 파도가 밀려오면 깔깔 웃으며 도망치길 반복했다.
"오빠도 해봐요!"
나도 따라 뛰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발목을 스쳤다. 그때,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펑— 펑—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칠흑 같은 하늘에 붉은 불꽃이 터지며 밤바다를 밝혔다. 낭만적이었다. 아니, 비현실적이었다.
"오빠."
그녀가 나를 불렀다.
"응?"
"이번 주 주말에 뭐 해요?"
"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럼 우리 그때 만나요."
심장이 또 한 번 쿵, 내려앉았다.
"좋아. 장소는 여행 끝나고 정하자."
"네!"
돌아가는 길, 우리는 음악 취향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는 무슨 노래 좋아해요?"
"나는 밴드 노래 좋아해. 너는?"
"저는 인디 밴드 곡 좋아하는데... 오빠 인디 밴드 노래 들어봤어요?"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그럼 제가 추천해줄게요. 오빠도 저한테 노래 하나 추천해줘요."
"좋아."
서로의 최애곡을 교환하기로 약속했다. 그녀의 호텔 앞에 도착했다.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들어가 봐요."
"응, 조심히 들어가."
숙소로 돌아온 직후, 핸드폰이 울렸다.
[이거 내 카톡이니까 저장해!]
그녀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름을 저장했다. 잠시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그녀가 추천해준 인디 밴드 노래를 틀었다.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낯선 멜로디가 귓가를 파고들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손목에는 여전히 그녀의 숨결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제주의 마지막 밤, 나는 그녀가 준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